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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 16, 2006

kiss of the spider woman 1985



Hector Babenco

willam hurt
raul julia
sphia braga

게이인 몰리나는 감방동기인 발렌티노와의 생활중에 점점 그에게 빠져드는데.
발렌티노는 반체제 운동가로써 체포되었다. 그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몰리나를 이용하는 정부.
그들은 결국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몰리나는 출감하여 그의 부탁을 틀어주려고 하지만
총에 맞아 죽고 만다.

간단한 내용이다. 물론 몰리나의 영화이야기, 거미여인이야기, 과거이야기, 발렌티노의 과거 등
여러가지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처음엔 성정체성의 문제를 다루는 이야기라고 여겨졌지만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럼 정치적 이슈를 다룬 것인가? 솔직히 이건 그렇다 해도 잘 모르겠다. 브라질에 대해서 모르니.
그럼 남은 건? 한정된 공간에서 현실, 환상, 바램을 통한 사랑이야기라고 생각해보기로 했다.

내가 성정체성의 문제에 대해서 다룬게 아니라고 생각한 건, 그것이 메인은 아니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20여년 전의 지금보다 덜 개방적인 사회에서는 충분히 이슈가 될 것이고 거기에 주목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내가 본건 2006년이다. 이미 이런 정도의 스토리에는 충분히 익숙하다는 것도 있을 것이고,
몰리나가 느끼는 것은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라기 보다는 사랑에 대한 혼란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는 남자에게 사랑을 느끼고 스스로를 여자라고 여긴다. 그것은 남이 인정하던 하지 않던 문제가 아니며
오직 상대 남자에 달려 있는 것이고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라는 것을 명백히 인식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렇기에 퀴어라고 볼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사랑의 이야기가 아닌가? 하고 생각을 해본다.

정치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솔직히 인지하지를 못하고 있다. 위에서 말한 간단한 이유외에도 발렌티노가 정부의 반체제 운동가로써 누군가를 탈출시키다가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고 있다는 정도와 그를 이용해서 뭔가를 알아내려고 하는 정부세력이 있다는 정도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자료를 찾아봐야 뭔가 생각을 할 수 있을 듯.

위 두가지 이야기를 버무려서 이루어 나가는 발렌티노와 몰리나의 사랑이야기이다
거미여인은 영화에서도 현실에서도 각각의 이름을 가지고 등장한다.
몰리나로써는 거미여인은 자신이 되고자 원하는 대상이며 자신을 투영하는 대리인이다.
발렌티노에게 거미여인은 처음엔 몰리나의 영화속 인물이었고, 몰리나이기도 하고 자신의 현실 속 사랑을 상징한다.
중의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거미여인은 그들의 사랑의 대상이며 동반자이며 죽음에 이르게 하는 거미줄이기도 하다.
결국 몰리나도 발렌티노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은 결국 거미여인이다. 거미여인의 진정한 의미는 무었일까?

거미여인은 걸려들면 벗어날 수 없는 거미줄 속의 절대자이다. 벗어나는 길은 걸려들지 않는 방법외에는 없을 것이다.
뭔가 빠진 듯 하고 애매한데 아마 그것은 위의 정치적 이슈부분에 대해서 무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검색을 해본후 보강하겠다.
무자막에 1채널만 나오는 오디오 덕분에 이해가 부족한 이유도 있으니 이것 역시 한번 더 봐야할. 젠장.

Jul 27, 2006

童年往事 A time to live, A time to die 1985

후샤오시엔의 영화는 솔직히 지루하다.
그의 영화를 나는 몇 봤지만, 거의 기억하지를 못한다.
가장 최근에 본 카페뤼미에르가 기억나는 정도.
그 유명한 비정성시도 시놉시스 조차 잘 기억이 안 난다.

뤼미에르도 그렇지만 샤오시엔은 야스지로를 참 좋아하는 것 같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난 동경이야기가 왜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다.
그건 아마도 다다미로 이루어진 방 때문인가? (오즈의 영화도 마찬가지로 잘 기억이 안난다. 묻지마라)

영화는 이건 나의 어린시절의 추억이다라고 시작한다.
원제인 동 년 왕 사를 풀이 해 보면 어린시절에 생긴일정도로 풀이할 수 있으니 당연하다.
영어제목인 A time to live, a time to die는 삶의 사간과 죽음의 시간을 말함으로써,
인생을 의미한다고도 생각되어진다.

이 영화는 아화가 기억할 수 있는 것 중심으로 이야기가 굉장히 주관적으로 진행되어진다.
본토(중국)에서 대만으로 아버지를 따라 이주하게 된 아화의 가족들.
아화를 꼭 데리고 본토의 메이군으로 돌아가려는 할머니.
(아화를 굉장히 챙기는 할머니를 보면서, 외할머니가 떠오른다)
연령대가 좀 헛갈렸던 4형제들 그리고 누나.
그리고 어머니.
어린시절의 여러가지 놀이들, 구슬치기, 팽이치기, 등등.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정말 지루하게도 조용히 흘러가는 영화.
중학교에 들어가서 부쩍 성장한 아화의 사춘기,(무섭더라. 칼들고 설치다니)
첫사랑의 기억.
어머니의 죽음.
그리고 할머니의 죽음.
이 세 죽음을 겪으면서 아화는, 또 그 가족은 조금씩 삶에 적응하고 성장하게 된다.
아버지의 죽음은 충격이었을 테고, 사춘기 방황의 한 원인이지 않을까 여겨진다.
어머니의 죽음은 그 방황에서 벗어나게 되는, 이를테면 철드는 계기가 되었으리라.
장례식에서 너무도 서럽게 혼자만이 우는 아화의 모습은 무언가 의미가 있겟지.
이제는 삶에서의 죽음이란 것이 단절이고 현실임을 인식한 건 아닐까?
그리고 할머니의 죽음은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한다.
죽음이후 시신이 부패할 때까지 몰랐던 그 형제들,
장의사의 책망하는 듯한 눈빛.
그 눈빛을 보면서 할머니와 걸었던 그 본토로 가는 길에서의 구아바열매를 따던 기억들.
자신만이 기억하는 그 길을 할머니의 죽음을 통해서 떠올린다.
그 길은 이제 자신의 길을 찾았다(혹은 찾아야겠다)는 것의 상징이 아닐까?

원래 육군사관학교로 갈려고 했던 아화. 하지만 그는 대학시험을 치게 된다.
수 메이에게 건넨 한통의 연서,-이제 그는 자신을 표현하게 된다.
그 즉각적 대답(조금 놀랬다. 옛생각이 나더라, 젠장)
대학시험에 합격하면 이라는 그 말에 아화는 대학시험을 치게 된다.

조금은 의외인 전개. 지금까지 가족의 일상과 성장, 그 죽음을 통하여 전개하던 이 영화는
여자애의 한마디에 순식간에 바뀌어버리는 아화의 미래를 예상할 수 있다.
수동적이기만 하던 아화를 수의 한마디가 이렇게 바꾸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과연 그러한가? 아니다.
여자애의 한마디에 바뀐 것이 아니라.
아화의 삶이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형태로 바뀐 것이다.
이제 그 자신의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살아가야 할 시간이다.
그 여러 죽음 속에서 그가 할 수 있었던 모든 것들이 울고, 자책하고 추억을 되새기는 것이
전부였다면, 수 메이의 한마디는 어떤 동기를 그에게 부여한 것이다.
이제 살아가야 할 때라는 것을.
(영화자체의 나레이션으로 그것이 강한 동기엿다고 말을 하지만, 그 이후의 수메이 소식을 전하면서 그것은
단순한 동기였음을 밝힌다. 물론 그 당시에는 굉장히 크고 중요한 계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하나의 과정일뿐임을 수메이가 이사하고 연락이 되지 않음을 전하면서 확실하게 인식시킨다-감독은 자신의 결정이 단순한 그 한마디만으로 이루어졌다고 오해받는 것을 경계한 것 같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또 그것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하므로 이러한 설명들을 이해한다)

한 소년의 성장과정을 담담하게 서술하는 영화이다.
거의 롱테이크로 이루어진 것은 아마도 후샤오시엔 감독의 성향이겠지. 그리고 딥포커스가 거의 없는, 쉘로우 포커스라고 표현하는게 맞는지는 모르지만, 포커스의 특정한 고정을 통하여, 아화만의 시각을 위주로 이건 완벽히 개인적, 주관적 서술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남의 일기를 보는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그는 자신의 추억과 대만의 과거와 현재를 담담히 주관적으로(자신의 성장), 또 객관적으로(대만의 변천) 잘 묘사하고 있다.

처음에 보게 되기가 굉장히 힘들었지만 처음의 고비를 넘기고 뒤로 가면서 참 재미있게 즐겁게 본 영화이다. 조금의 고비만 참을수 있고 잠들지만 않는다면 끝에 가서 여러모로 즐거울 영화라고 생각한다. 볼 기회가 있다면 나처럼 주저하지 말고(볼생각 가지고도 한달이 넘게 안 보고 있었다), 그냥 편안하게 봐도 후회하지 않을 영화라고 생각한다. 할머니가 찾는 다리와 아버지가 구입한 대나무가구들 등 여러가지 장치에서 대만과 중국의 교차되어진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점도 감안해서 보면 더 나을 듯.( 난 그렇게까지 확장해서 보지는 못했다)

언제 시간을 만들어 그의 작품 몇몇을 더 찾아서 봐야겠다.
후샤오시엔의 영화는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어떠한 가슴으로 느껴지는 것들이 있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