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 26, 2006

300번째 포스팅 300th Posting

블로그를 처음엔 아무 생각없이
이것 저것 뭔가를 기록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했었다.

시간이 지나고
게시물이 누적이 되면서
짧은 영화감상이 주가 되어버렸지만
그런 의도는 전혀 없었다.
내게 조그만 도움이 되었을거란
생각에 그냥 만족하련다.

이런 말을 했었다.
1000개의 영화감상을 올리고 싶다고,
그래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건
아니다.

그냥 그러고 싶었을 뿐.

단지 내가 적고 싶은 것.
아무도 보지 않을지라도,
아니 아무도 보기를 바라지 않기도 하는,
솔직함을 기록하고 싶다.

그것이 영화이던, 책이던, 음악이던,
살아가는 이야기이던,

블로그의 제목처럼
상상력만이 나를 살아남게 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말이다.

블로그의 처음 제목은
You talking to me?
였었다.
taxi driver에 나오는 대사다.
그 시비조의 말이, 그 스쳐지나가듯 하는 대사가
그 때 블로그를 적는 내 심정이었다.

시간이 조금 흘렀고

지금은 상상력을 키우고 싶다.
그래서 만족한다.비록 작은 만족일지라도.

이제 상상의 나래를 필수 있으려나?

Pulse 2006


쿠로사와 키요시 - 이름은 들어본 것 같은데-
의 Kairo라는 영화를 미국에서 리메이커한 작품.

Veronica Mars의 Kristen Bell이 주인공이다.
TV의 학생탐정이 공포영화의 쫓기는 히로인이
되어서 다소 적응이 안되었다.

링에서 비디오에서 나오는 사다코는
지금 생각해도 정말 섬뜩했었던 것 같다.
현대에 있어 컴퓨터, 인터넷, 휴대폰등의
첨단기술들이 주는 편리와 더불어
그에 따를 지도 모르는 불안과 공포에
착안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링의 아류이긴 하지만 말이다.

얼마전에 본 Be with me가
소통과 소외에 관한 진지한 접근이었다면
이 영화는 공포심을 자극한다.
소재가 조금 식상하기도 하고
공포요인도 부족하다.
단지 그럴수도 있겠다는 암묵적 인정
정도가 가능했다.
뭐 그렇다 하더라도 재미있게 볼수 있는 점도
분명히 있다.

공포영화에 메시지가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러한 메시지가 기본으로 있고
공포도 버무려야 했었는지 몰라도
둘 다 애매한 편이다.

Brave Story ブライブスト-リ- 2006

언젠가 만화책으로 읽어본 기억이 나는 애니메이션
다 읽어 본 건 아니고, 잠깐 시간 때우려고
간 만화방에서 스치듯 본 기억이 난다.

장르 문학중 하나인 판타지 쪽에서
이계진입물이라고도 불리우는
다른 차원? 또는 세계에
이 세계에서 넘어가는 이야기를 총칭한다고
할 수 있다.
뭐 이 스토리에서 특이한 것은
이계에 가서 보석을 모두 모으면
하나의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설정정도.
우리 나라 장르 문학에서 이계진입물
환생물, 무협과 판타지의 퓨전등은 이미
차고 넘치니까 말이다. 물론 수작들도 있겠지만
진짜라는 느낌을 주는 소설은 아직 보질 못했다.
각설하고,

어린이들이 보면 딱 좋을 것 같다.
적당히 흥미롭고, 현실적인 면도 없잖아 있고,
교훈적이기도 하니까
애들 보여주면 좋을 것 같다.
내가 그렇게 느낀 애니메이션은
그렇게 많지 않은데 이것도 괜찮을 것 같기는 하다.
처음으로 그런 느낌 받은 것은
"Iron Giant"이다.

평범한 소년 와타루가
새로이 전학온 아시카와를 만나고
비전으로 불리우는
이세계의 통로를 알게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혼
엄마의 병.
그는 비전으로 넘어가서
엄마를 고치려고 한다.
거기에는 이미 아시카와가
자신의 동생을 돌려받기 위한
보석모으기가 진행중이다
둘의 충돌.
화해.
정의란 무었인가?
선택.
그리고 현실로 돌와와서 본 것은
그들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뭐 대충 그렇게 기술할 수 있을 것 같다.
애들하고 같이 보라.



Nov 24, 2006

World Trade Center 2006


2,749 People died at the WTC,
including citizens from 87 countries.
세계 87개국 2,749명이 세계무역센터에서 사망했다.

343 were New York City Firemen,
84 were Port Authority Employees, Of Whom 37 were Police,
Another 23 were New York City Police.
343명은 뉴욕시 소방수였고,
84명은 항만청(?) 사람, 그 중 37명은 경찰이었습니다.
그리고 뉴욕시경찰 23명이 더 해집니다.

Only 20 People were pulled out Alive,
Will and John were Numbers 18 and 19.
Will had 8 surgeries in 13days,
John was put into a medically-induced coma
for 6 weeks to allow for 27 surgeries.
생존한채로 구출되어진 사람은 20명에 불과하며
윌과 존은 18번째, 19번째 구출자입니다.
윌은 13일간 8번의 수술을 했으며, 존은 6주간의 의학적
코마상태에서 27번의 수술을 해야만 했습니다.

They are retired from active duty and live with
their families in NY and New Jersey.
그들은 현직에서 은퇴후 뉴욕과 뉴저지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Dave Karnes re-enlisted in the marines
and served two tours of duty in Iraq.
데이브 칸스는 해병대에 재복무를 신청하여
이라크에서 두번의 파병근무를 햇씁니다.

For the fallen men and women of the
port authority police department.
항만경찰국의 숭고한 희생자들을 위하여
.....
and for all those who fight , died,
and were wounded that day.
그리고 그날 함께 싸우고, 다치고 사망한 모두를 위하여.


위와 같은 긴 지문을 마지막으로 영화는 끝난다.
내용의 줄거리는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리고 영화에 대한 평가 또한 하지 않는다.

911에 관한 많은 해석과 접근, 그리고
진실에 대한 의문이 산재해 있지만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것은 아니다.

극중 윌의 마지막 독백이 모든 걸 말해준다.

911은 우리가 경험한 악의 발현 중 최고의 하나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귀중한 것도 얻었다.
우리가 잊어가던, 잊고 있었던 서로를 배려하고
도와가면서 살아가는 선함을 깨닫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것 외에는 영화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솔직히 할 말이 없다.
911의 실재라던지, 음모라던지,
모든 것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분명히,

하지만 여기서 다치거나 죽은 사람들
그리고 지금도 고통받는 보통사람들.
남을 도우려는 사람들,
이데올로기와 관계없는(실재로 그러한 사람은 없지만)
정말로 보통사람들이 겪는 911 당시를 보여준다.

그들은 그냥 자신의 남편이, 친구가, 아버지가, 자식이
살아있는 것을 바라고, 또 감사할 뿐이다.

아마도 이러한 재앙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이렇게 작아보이지만
가장 큰 사람의 사랑, 정을 지켜주는 것일 것이다.

Wicker Man 2006

Nicolas Cage.

wicker man? 이게 뭔데?
뭐하자는건데?

좀 흥미로워질려다가.
사교집단 조심?
사교집단의 생존방식을 보여주는 건가?
해결을 바라진 않는다.
그렇지만 이건 아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피와 연결된
강한 남자를 제물삼아
종족번식을 하고
또 생존해나가는 지는 모르겠지만
이걸 보여주는 이유는 뭔가?

불쌍한 한 남자를 절망으로 몰아서
딸의 손에 타 죽게 하는걸 보여주는 이유는 뭔가?

그럼 초반부의 사고부분과 그에 따른 환영은
그들의 작업을 순조롭게 하기 위한 마법인가?
그냥 신비로운 이야기인가?
영화로 보기엔 진짜 돈 아까운 영화.
그냥 공포드라마 시리즈 중 에피 하나 정도로
적당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Shit!

Feast 2006


오랜만에 끝까지 본 horror movie.



괴물이 나오고 많은 인물들이 나오고
인물들과의 인간관계와
그 속에 나타나는 작은 사회에서의
인간이기심은 여전하고,

일단 피는 흥건하다.
그래도 비현실적인 괴물이라
실감이 덜 나서 그런지
잔인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무서운거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강도가 약하다.
시간 때우기용 공포영화로 보면 적당.

샤만카 (Chamanka, Szamanka, 1996)




내가 유일하게 정확하게 기억하는 그의 영화는
나의 낮은 당신의 밤보다 아름답다?
그리고 소피마르소의 남편이었다는 거 정도.
아 public woman도 있었나?

샤만카란 말은 아마 주술사인 걸로 짐작된다.
sharman정도겠지. 뭐.

비정상적인 인물 투성이에
어느날 인류학과에서
옛 유골을 발견한다.
그것은 피부층까지 잘 보존된
최상의 것으로서
그것을 연구하는 교수와

미쳐돌아가는 세상에 미쳐 있는 여대생?
의 사랑이야기?

정확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또 동영상이 폴란드어로 대사를 치는 가운데
러시아어로 덧 씌워버린 무식한 짓을 저지른
버전이라 전혀 집중이 안되었다.
안 그래도 정신이 없는 영화인데?

결국 그는 미쳐서 죽고
그녀는 여전히 미쳐 있다.
내가 이 영화를 다시 볼지는 미지수.

Lemming 2005

레밍이 스칸다나비아 반도에서만
산다는 것을 알게 해준 영화.

공포영화도 아니고?
환상특급도 아니고,
내게는 조금 애매했던 영화.

홈오토메이션 디자이너로 일하는
알랑은 사랑스러운 아내 베네딕뜨와
행복하게 살고 있다.

회사의 간부와 그의 아내 앨리스를
초대하여 식사를 하던중 앨리스의
기이한 행동으로 인하여 악몽은 시작된다.

알랑은 고장난 싱크대를 고치던 중
쥐와 비슷한 동물을 꺼내게 되고
베네딕뜨는 동물병원에서 그것이
레밍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앨리스는 알랑에게 기이한 행동을
한 후 그들의 집에 찾아와서
자살해버리는 황당한 시츄에이션.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환각인지
실제인지 모를 상황이 계속된다.
그는 출장도중 아내가 걱정이 되어
돌아왔는데 집이 레밍천지이고
그로 인해서 병원에 입원하는데
깨어보니 교통사고랜다.

빌린 별장에서 갑자기 사라져버린
베네딕뜨, 갑자기 그를 떠나서
회사간부넘과 눈이 맞아버린 아내.

폐인이 되어가는 그에게
찾아온 앨리스
아내를 찾고 싶냐고 묻고는
집열쇠를 하나 준다.

간부넘을 죽이고 아내를
데려오고 집을 폭파시키고
돌아오니
아내는 이상한 꿈을 꾸었댄다.

실제와 혼재하는 악몽들
악몽을 혼란시키는 실제.

어느 것이 꿈이고 현실인지?
를 애매하게 만들어버린다.

스칸다나비아에서만 사는
레밍이 이 집에 나타난
이유는 허망하게 밝혀지고,
그럼 레밍떼와 부부의 악몽은?
자살로 판정되어지는 앨리스부부의 현실은?

사람에 따라 재미있게 볼수도 있고,
전혀 아닐수도 있는 영화인 것 같다.
그럼 나는?
글쎄 나름 재미있게 보았던 것 같다.
깔끔한 공포판타지.

Nov 21, 2006

도망자 逃亡者 Runaway 2004

에구치 요스케
아베 히로시

미국의 드라마 및 영화 The Fugitive를 일본에서
리메이커 한 작품이라고 한다.
예전에 보려고 하다가 그만 두었던 기억이 있다.
1편을 다시 보니까 그 이유는 짐작이 간다.
그 이유는 너무 일방적인 범인 만들기의 상황으로
몰아가는 것이 맘에 안들어서 일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끝까지 한 번 볼 생각이다.


단란한 가정의 가장으로써 보호관찰관인 주인공은
의사인 아내, 그리고 아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다.
어느 휴일 보호관찰중인 여자가 도둑질을 하면서
그는 경찰서로 가게 되고
그날 그의 인생은 모든 것이 바껴버린다.
아내는 살해당하고 아이는 중상이다.
그도 다친다. 그러나 모든 증거와 정황은
그를 범인으로 몰아가고
구치소 이송도중 터널의 화재사고로
우연히 그는 도주하게 된다.
과연 그의 선택은? 뭐 뻔하지 제목을 봐라.

자 이제 다음을 보러 가야겠다.

계속 보면서 예상한 범인과 도망자, 형사의 대결구도는
모두 다 무너져 버리면서 이 드라마가
원작보다 낫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는 말이 기억났다.

이 드라마는 최소 5~6번 이상의 반전이 있으며
마지막 반전은 진짜 의외였다.

나가이의 과거와 보호관찰관으로서의 일.
미네시마와 나가이의 연결고리
츠루, 타도쿠로, 그리고 미네시마와 연결되는
과거의 사슬은 미네시마를 최종보스로 지목하는 것
같은데 의외로 아내 준코의 죽음은
병원의 내부사정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 밝혀지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모두가 잡히고 죽고 회개하는 가운데
나가이와 리쿠는 평온을 찾으려고 하는 데,
세명의 주요배역을 맡은
나가이
미네시마
오자키는
각각 하나씩의 의문이 생기고
모두들 병원으로 향한다.
최종보스는? 직접 보시는게 나을거다.

처음에는 좀 식상한 구도로 가는 듯한 느낌이라
지루했지만 극이 중반을 넘고 탄력을 받으면서의
재미는 훌륭하다. 그리고 그것을 풀어나가는 퍼즐맞추기
범인을 맞추는 재미라던지?
원작은 기억나지 않지만
연속되는 뒤통수를 치는 반전의
후반부로 갈수록 정말 재미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드라마로 이정도면 정말 괜찮다는 느낌이다.

이런 추리스릴러물 같은 경우
Unfair 이후 간만에 재미있게 보았다.
그 이상이라고 표현해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방법은 내게 없다.

江口洋介 Abe Hiroshi의 배역 소화도 괜찮았다.
뭐 카리스마가 약간 부족한 듯도 하지만 무난하다.

초반부의 루즈함만 극복한다면 후반부에서는
만족할 것이라 보장한다. 난 초반이 조금 힘들었다




Nov 20, 2006

사랑따윈 필요없어, 여름 [愛なんていらねえよ,夏] 2002



근래 우리나라에서 문근영 주연으로 리메이커를 한다길래
또 아츠로의 목소리와 카리스마틱한 연기를 완벽하게 느낄 수 있는
이 작품을 다시 보게 되었다.
리메이커작은 두 한국배우가 아무리 잘해낸다 하더라도
아츠로와 료코의 포스에는 결코 미치지 못할 거라 생각을 하고 있고
이 번에 다시 보면서 더욱 확신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작품에서는 아츠로의 연기도 연기이지만
그의 독특한 저음의 허무한 듯한 보이스를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최고의 장면들을 꼽는다면
반딧불이를 보러간 장면,
타쿠로가 레이지에게 1억엔으로 그의 진심을 사는 장면,
레이지와 아코가 바다가 보이는 호텔에서 역할놀이를 하는 장면
등 기억하는 이상의 멋진 장면들로 수놓아져 있다.

이 작품에서의 아츠로는 나쁜 남자이지만 그 누구도 그에게
빠지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가히 최고의 캐릭터와의 조화이며 연기이다.

마지막 세개의 에피소드에서의 두명의 연기는 가히 최고이며
내가 봤던 드라마 들 중에서도 최고의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랑따윈 필요없어라고
외치지만 그들이 절실하게 원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잘 보여주고 있는 드라마이다.

하지만 난 레이지가 병원에서 죽었으면
진짜 걸작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007 Casino Royale 2006

Who is Daniel Craig?

제목만 보고는 옛날 영화인 줄 알았는데 최신영화였군
처음엔 yamakashi, xxx 보는 줄 알았다.
그러다 갑자기 도박드라마가 되더니.
어설픈 Mission Impossible이 된 듯한 느낌.

하긴 처음처럼 계속 갔으면 딱 XXX가 되어버릴테니까.
솔직히 중반의 여자주연과의 만남과 도박장면에서
너무 지루해져 버려서 초반의 참신함은 다 없어져버렸다.
그리고 도박장면이 끝난후는 제임스 본드는 없어져 버리고
mi2 mi3 의 감정과잉 이단 헌트가 되어버렸다고나 할까?

뭐 내가 007시리즈의 팬도 아니고
훌륭하게 생각하지도 않긴 하지만
볼만은 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뭔가 포스가 부족하다.
007은 제임스본드의 카리스마와 본드걸을 보는 재미가
그 반이상은 차지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신세대 본드는 이미지가 맞지 않는 것 같다.
역시 최고는 션코너리와 로저무어였던 거다.
그들을 능가할 본드는 결코 아닌 듯.

뭐 그래도 허접하다고 까지는 말 하지 못할 듯.

DOA 2006

Xbox의 Dead or Alive를 영화화했다.
게임을 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그냥 시간 때우기용
여자들이 뭔가 볼륨감이 부족하다.
DOA는 비키니 입은 여자들을
보는 재미가 아닌가 말이다.
시간이 남아돈다면 한번 보시길.

四日間の奇蹟 Miracle in four days 2005


4일간의 기적.
요시자와 히데타카


요시자와 히데타카 주연의 영화이다.
내가 이 배우를 기억하는 것은
닥터고토 진료소 라는 드라마를 통해서였고
또 영화 Alway 3번가의 석양에서도 특이한 캐릭터로 접했었다.

키사라기는 유명한 천재피아니스트였으나 총격사고로 손가락을 다치고
그 사고를 통해서 정박아인 치오리를 입양하게 된다.
그러던 중 그는 치오리의 음악적재능을 알게 되고 그것을 발전시킨다.

마리코는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이혼을 하고
뇌질환 전문 요양소에서 모든 사람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그녀는 첫사랑인 키사리기와 치오리를 요양소로 초청하게 된다
마리코는 치오리와 마당에서 놀던 중 낙뢰사고로 크게 다치게 되고
치오리와 몸이 바껴버린다.

그녀는 죽음에 대해서 고민하고 갈등하지만
결국 그녀에게 주어진 4일간의 시간을 통하여
그녀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을 느끼고
또한 치오리와 키사라기에게 마음의 상처를 회복시키며
자신의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만족스럽게

내용의 소재는 얼핏 비밀이라는 일본영화와도
비슷하게 보일 수 있지만 파격적이지는 않다.
다만 자신을 되돌아볼수 있는 4일간의 기회가
당신에게 주어진다면, 또 그것을 만약 선택할수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냥 평이한 영화지만 나름대로 재미있게 보았다.

각설탕 2006

임수정
유오성

임수정의 연기가 꽤 괜찮았다는 말을 들었는데,
내가 보기엔 영 아닌 것 같다.
캐릭터와 전혀 하나가 되지 않은 것 같다.
눈 동그랗게 뜨고 소리지르로 운다고
연기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그에 반해 유오성의 연기는 역시 수준급이다.
캐릭터 자체의 한계로 인해서 그리 눈에 뜨이지는 않지만
완벽하게 절제된 연기를 보여준다.

영화 이야기는 하지 않고 연기 이야기만 하는 것은
영화에 대해서 별로 할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말과 사람, 그리고 사람에 관한 이야기는
어떤 감동을 줄수 있는 요소와 극적 구성요소를
제대로 배치해야만 한다. 그런데 그런 것이 전혀 없다.
단지 대립과 감상만이 있을 뿐
말과 사람에 대한 감성이 부족하며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결국은 신파일 뿐이다.
단지 동물에 관한, 경마에 관한 이야기를 시도했다는 것
자체만은 인정한다.
그러나 Seabiscuit은 물론, dreamer에도 훨씬 못 미친다.

이와이 슌지 (岩井後二, Shunji Iwai) 와 불꽃놀이 아래서 볼까? 옆에서 볼까? (Fireworks, Should We See It From The Side Or The Bottom?, 打ち上げ花火, 下から見るか? 橫から見るか?, 1993)


제목 그대로의 영화...

불꽃놀이를 아래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

아마 둥글지 않을까? 그런가?

이와이 슌지의 최초의 작품인가?
하지만 내가 가장 최근에 본 작품이 되었다.

이와이 슌지의 감성이 항상 부러웠다.
그의 영화를 보면서 항상 느꼈던 것들이다.
그 감성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

아마도 사물을 보는 편향되지 않은 시각일 것이다.
이 영화를 이와이 슌지의 베스트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제목만으로는 이와이 슌지의 모든 것을 말한다고 느낀다.

불꽃놀이를 제대로 본적도 별로 없지만.
이런 의문은 가져본적 조차도 없었다.

불꽃놀이는 아래에서 보면? 옆에서 보면?
그 자체의 모습이 바뀌는 걸까?
아니면 보는 시각에 따라서 달라지는 걸까?
하는 그 의문에서 이와이 슌지의 모든 영화는 시작된다는 느낌이다.

이 영화의 감상을 적어야 할 테지만
본지도 열흘 정도 되었고
일본어 대사하나를 놓치는 바람에
그 내용을 알고 적어야지 하고는 잊어버렸었다..
이 작품은 내용이나 전개 화면 같은 것 보다.
제목자체와 그에 따른 사물을 보는 시각의 관점이란 점에서
더 기억에 남는다고 해야할것 같다.
그리고 내가 이와이 슌지에게 궁금했었던 것들 중의 하나이며
그 답이기도 할 것이다.

이와이 슌지의 작품을 가장 처음 본 것은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러브레터일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장면, 그리고 모두가 기억하는 장면과 대사.
오겐끼 데스까? おげんきですか?
그 영화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나름대로 심금을 자극하는 뭔가가 있는 멜로라는 느낌이었다.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지만 억지로 뭔가를 떠올려 본다면
그리움에 따른 환상과 현실의 괴리와 조화.
다시 말한다면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과 앞으로의 사랑등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환상속에 버무렸다고 해야 할까?
뭐 대충의 기억에 의해 적는거라 이게 한계다.

그리고 아마도 4월이야기.
이걸 처음 봤을때는 아마도 러브레터와 비슷한 시기였을 것이다.
전작이 눈의 이미지였다면 4월이야기는 억수같이 쏟아지는
벗꽃과 비의 이미지 중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러브레터 이전의 사랑의 시작과 그 발아를 보는 듯한
젊은날의 상큼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첫사랑, 짝사랑의 추억과
대학초년생의, 또 혼자서 살아가기 시작하는,
시작과 그것을 가능케하는 사랑일 것이다.
부언하자면, 4월이야기를 러브레터보다는 선호한다.
아 참 하나 더 여기에서 마츠다카코는 최고다.

언두는 내게 있어 불편한 영화였다. 가위를 눌려본 적 있는가?
가슴에 뭔가 묵직한게 앉아서 목조르는 듯한 그 느낌이었다.
그래서 언급치 않겠다.

아마 위의 두작품을 보고서 오랫동안 이와이의 영화를 보지 않았다.
이와이는 내게 멜로러브스토리 작가로써 낙인이 찍혀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다 우연히 그의 작품을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된 작품이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일 것이다.
보게 된 동기는 이와이의 이름값이 아니라.
일본배우들 중 내가 선호하는 배우들 중 하나인 와타베 아츠로의 이름이
이 영화에 적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이다.
아 물론 아리타라는 잼필름의 영향도 있었다.

솔직히 별 기대를 하지 않으면서 봤는데 왠걸.
이건 대박인 거다. 여기서 부터는 이전에 적었던 감상을 조금 차용해야겠다.

[결론적으로, 아니 간단히 말한다면 "
Yen에 매여있는 상태에서의 벗어남, 탈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는 없다.
이 영화는 정체성의 혼란, 사회의 붕괴, 혼란, 빈부의 격차, 도덕의 몰락등
그 모든 걸 포괄하고 있다. 단지 강조하고 있는 것이 Yen이라고 느낄 뿐. ]
그리고 아래와 같이도 적었다.
[이와이 슌지의 감성이 현실에 제대로 묻어나는 영화이다.
러브레터 4월의 아름다움은 더 이상 없다. 그렇다고 언두의 비관적인 모호함도 없다]

위와 같이 느꼈다고 적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왠지 낯뜨거워지는 문장들이다.

스왈로우테일을 생각해보면 Chara가 부르는 my way가 떠오르며
아츠로가 내뱉는 Today is not your day란 말이 생각난다.

스왈로우테일은 가상의 암울한 근미래 인간들의 모습이다.
인간은 발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과연 그럴까 하는 의문과
현재에 대한 부정과 비판을 그의 감성은 제대로 비틀어대고 있다는 느낌이다.
옌타운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군상들, 삶의 방식. 그리고 왠지 거칠지만
내게는 더 와 닿는 화면의 질감들은 나로 하여금 이와이 슌지를 완벽하게
재인식하게끔 만들었으며, 그의 모든 작품 중에서 favorite이라고 꼽게도 만들었다.

그리고 또 뭐를 봤더라 그래. 피크닉.
제목부터 러브로맨스의 느낌이 팍팍 풍기지 않는가? 맞다.
피로 물든 광기의 소풍을 로드무비로 이렇게 억지로 이어지는 선을 통하여
하늘과 도시 그리고 벽위의 그들을 대비시키고
정신병원, 병원에서 나와서 보는 것들, 그리고 바다의 일몰? 앞에 작열하는
악마의 날개짓과 흑색으로 느껴지는 피의 이미지들.
Chara와 타다노부라는 두 사람을 부부로 만든 이 작품은 뭐랄까?
정말 암울하지만 희망을 느꼈다고 해야 하나 그렇다?
그러면 영화를 본 직후엔 내가 뭐라 지껄였나 보자.

역시 복잡하게 끄적여서 옮기기엔 너무 길다.
i know when the world will end.
when i die.
it began when i was born so when i die, it will end
위와 같은 대사만 생각해보련다.

나는 세상이 언제 끝날지 알아.
내가 죽을때야
태어나면서 세상은 시작되고
그러니까 내가 죽으면 끝나는 거야.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자기중심적 완결형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완벽하게 동의한다는 것이
왠지 뭔가 아쉽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제 이와이 슌지는 스왈로우테일의 엔타운을
참을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구원을 꿈꾼다.
다양한 방식으로 하지만
까마귀 깃털옷을 입은 코코가 마치
이카루스를 상징하는 것 처럼 일몰의 바다에서
그들은 스스로를 살해하고 만다.
세명의 인물은 모두 사회에서 버림 받았다.
하지만 그들은 나름대로 구원을 하기를 원하고
구원을 받기를 원하나.
하지만 그들이 바다에서 태양을 봤을때
모든 것은 시작되어버린 걸까?
끝나버린걸까?

그리고 하나와 앨리스를 보았다.
지금까지의 이와이가 하나의 사건
여러가지 입장, 시각의 차이에 기초해서 작품을 만들었다면
이 영화는 완전히 다르다는 느낌이다.
두명의 절친한 사춘기 소녀의 정체성 찾기라는
기본적인 주제 속에 두 소녀의 성격과 하고 싶은 이야기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 그녀들의 아픔 바램
그 모든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고 할까?
아마도 이와이 슌지 작품의 완성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구원과 절망의 틈바구니에서 빠져나와
두 소녀를 보고 진짜 자기가 보고 싶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멀리 있는 다른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란 걸 인식햇으며
완성된 이야기 구조와 사건의 유기적인 결합들로
당위성마저 부여하면서 이 소녀들을 사랑하게 만드는
그만의 감성터치는 이제 절정이다.

그리고 그의 영화 중 가장 쉬운 그리고 많은 복선과
의미를 내가 느낄 수 있기도 했다.

이제 마지막이다.
릴리슈슈의 모든 것.

그는 이제 일본의 현실,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고 있음을
명백히 선언하고 있다. 개인의 시각, 집단의 시각.
혼재된 시각. 언두의 꼬여 있는 줄의 이미지로
그는 회귀해버렸다. 훨씬 세련되지만 더욱 혼란스러운
이미지로 말이다. 원조교제, 이지메, 오타쿠 문화
인터넷. 이제 다시 돌아온건가. 이걸 어떻게 봐야할까?
하나와 앨리스가 감성의 완성형이라고 한다면
릴리슈슈는 이제 새로운 불꽃놀이를 보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보는 시각, 그리고 내포된 의미. 그것을 사용하는
개인과 집단들.

꼬이고 꼬인 정체성의 혼란인 언두의 밧줄과
불꽃놀이를 어떻게 볼까? 어떻게 보일까를
고민하는 시점의 문제, 그리고 잔혹한 현실의 직시라는 점에서
아마도 이와이 슌지의 새로운 시도로 볼수도 있을 것 같다.

적다 보니까 글이 이상해지고 황당해져버렸지만
아마도 이글을 블로그에 올리는 것은 꽤 나중의 일이 될 것이다.
조금 고치고 감상을 정리하고 사실을 확인한 후에 말이다.
2006-11-06 23:23:19

새로운 이와이 슌지의 작품 소식을 스쳐지나가는
화면에서 본 것 같다. 아주 기대가 되긴 하지만
너무 많은 기대는 항상 금물이다.

그렇지만 그의 시각과 감성
그리고 새로운 시도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기대감 마저 금할 수는 없다.

그에게 새로운 스왈로우 테일을, 하나와 앨리스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작품에서 그의 감성과 인식이
나에게 감흥을 줄 수 있을거라 믿고 싶을 뿐이다.

Ps. 하나만 더 말한다면 내게 있어 모호함과
불편함으로 인식되어 있는 UNDO를 새롭게
볼 수 있게 해주었으면 하기도 한다.
왜냐면, 그의 영화는 모두가 어떤 연장선상에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ps2. 음 위의 기대는 불가능할 듯
새 영화 제목은 무지개 여신. 로맨스 쪽일 듯.^^


Nov 17, 2006

Be with me 2005




Singpore

Eric Khoo

집중해서 자세하게 보이진 않았다.
영화를 보면서 얼핏 떠올렸던 것은 릴리슈슈와 느낌이 비슷하네하는
단편적인 느낌이었다. 뭐 주제는 다른 것 같지만 말이다.
아마도 릴리슈슈의 넷상의 주고받는 리플과 여기에서의
메신저를 통한 의사교환, SMS를 통한 대화,
수동타자기를 통한 자서전식의 글
끝내 전해주지 못한 편지지의 글들.
점자로 읽는 뉴욕타임즈,

처음에는 대화, 소통, 단절, 문명, 뭐 그런 것에 대한 생각이었다.
실제적인 대화는 극히 드물며 자신의 의사를 문자로 전송할 뿐이다.
그리고 쳐다보다는 것이 전부인 왠지 수동적인 느낌을 받았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기록하고, 훔쳐보고, 피하는 것 같다.
뭔가를 지극히 갈구하지만 직접적인 표현을 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슬픔같은 것을 느꼈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삶의 편이성은 증대되고 있지만,
실제적인 인간의 소통은 더욱 줄어들고 외로워지고 있지 않은가?
아마 예전 같으면 직접 가서 만나고 이야기하고 그럴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단지 문자를 보내고 쳐다보고 상대방이 답하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게 길들여지고 있는 느낌이랄까?
인간이 기술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문명이, 기술이 인간을 이용하고 있는 것 같다.

소통의 갈구, 그러나 소통의 부재,
같이 있고 싶어하지만 그것을 직접적으로 표현조차 못한다.
단지 화면에, 활자로 보이는 것들에 묶여서
그것만으로 상대를, 자신을 판단하고
또한 다가서지 못하고 훔쳐볼수 밖에 없는
어이없는 관음증에 우리들은 빠져들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타자로 찍히는 활자의 마지막 말.
Be with me.
하고 싶은 말은 그것이 전부인데
그것조차 직접할 수 없는, 너무 어려운 우리들의 자화상을
그리고 있는 것 같다.

생활의 편리, 편이 때문에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한 번쯤은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현대를 살아가면서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들.
우리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오히려 진정한 소통의 부재에 몰려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인간은 점점 더 외로워지고 있다.
함께 하고 싶다는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영화 자체는 재미가 없다.
관념적이기만 하고, 연결이 잘 안되는 느낌.

하지만 생각할 여지는 충분히 있는 영화.
한가지 이야기를 너무 흐트려 놓았다는 느낌이 조금은 든다.

그래도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내가 느낀것이라면 그 의미에 동감한다.

백야행 白夜行 2006

와타베 아츠로(특별출연)
야마다 타카유키
아야세 하루카

남자주연 때문에 안 보려고 했던 드라마이다.
하나 아츠로의 포스는 그걸 극복해버리고 만 케이스
후지하라 다츠야(배틀로얄, 데스노트,..)와 더불어 비선호 배우 탑을
다투는 야마다 타카유키는 왜 이렇게 마음에 안 드는진 모르겠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고 싶지 않은 배우이다.

자신의 부모를 죽인 두 아이.
키리하라 료지, 유키호, 그리고 그 주위에 기생하는 악 마츠우라(아츠로)
이들의 얽히고 설킨 관계와 그들을 쫓는 사사가키 형사.
두 주인공의 말처럼 그들은 죄에 죄를 더하면서
시효만료일의 그날을 기다린다.
솔직히 바보들 아닌가? 어렸을 때 지은 죄를 감추기 위해서
계속 죄를 더하면 그 죄는 언제 시효만료가 된단 말인가?
일단 5편까지는 봤는데 다음 편 쯤 아츠로가 죽을 것 같은데
그 이후에 볼지 안 볼지는 미정.

아츠로의 포스외에 기타배우들의 연기는 안습이다.
주인공 캐릭터를 제대로 살리고 있지 못하는데다.
캐릭터 조차 엉성하고 중심이 없다.
아야세 하루카는 캐릭터의 그 고뇌하는 팜프파탈로서의
이미지를 소화하기에는 솔직히 역부족인 것 같다.
이런 역할은 역시 두 료코(요네쿠라,시노하라)가 제격인데. ^^
남자 배우는 오다기리나, 아츠로가 주인공을 맡았어야 한다.
나이가 안 맞으려나. 쩝.
그리고 솔직히 억지적인 전개는 조금 심하다.
그거야 드라마라는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하긴 하지만 말이다.

내용자체는 흥미롭다. 너무 꼬우는 게 좀 그렇긴 하지만
아츠로가 죽을때 까지만 조금 더 심도있게 다뤘으면 어땠을까?
사사가키는 왜 그리 집요한지에 대해서의 설명도 그렇고
고뇌도 이해하기 어렵다. 자신으로 인해 한 소녀의 죽음이
야기되었다면 유키호의 상황에 대해 의심을 한다하더라도
그렇게 일방적으로 의심하는 건 조금 이상하다.
이 네명의 인물 중에서 중심역할을 충분히 해야 할
사사가키의 비중과 설명이 부족하다는 느낌..

어찌되었던 결론을 내린다면
흥미롭고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훌륭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기야 아츠로를 보기 위해서 본 작품이라
편향적인 시각인 것을 인정한다.

어느 댓글에 누가 표현하듯
하늘에서 내리는 1억개의 별
사랑따윈 필요없어 ,여름
에 비교할 수는 없다.



낙하하는 저녁 (落下する夕方: Falling Into The Evening, 1998)




와타베 아츠로
칸노미호

에쿠니 가오리라는 유명 일본여류 소설가의 작품을 영화화 한 작품.
아츠로 때문에 보았지만 끝까지 보지는 못했다.

8년간 사귀고 동거해온 남자로부터의 이별통보
그러나 일상적 관계는 유지하고자 하는데
갑자기 자신의 집으로 와 같이 살게 된 옛연인의 여자친구.
이해 할 수 없는 그녀를 점점 조금씩 이해하게 되는 리카.
자신의 사랑과 변해가는 환경에 혼란스러워하는 켄고
그리고 무책임할 정도로 자유분방하기만 한 하나

이들의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집중이 잘 되지를 않아서 끝까지 보지를 못했고
영화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놓쳤다.
난 삼각관계가 들어간 이야기에 몰입이 되지를 않나보다.
물론 이 영화가 삼각관계를 다룬 영화인 것 같지는 않다.

변해가는 관계, 변해가는 개인에 대한 것이리라.
내가 느낄 수 있었던 건 그것 뿐.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보라고 권해줄 수는 있을 듯하다.

시간 2006

김기덕

최근 영화보다는 한국영화계에 대한 말로 인하여
더욱 화제가 된 김기덕 감독의 작품이다.
한국영화계에 있어서 소중한 존재의 한 사람인
그가 조금은 적절하지 못한 행동을 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지만 그의 영화는 여전히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의 영화가 내 맘에 든 적이 별로 없다는 것은
제외하고 말하더라도 말이다.

끊임없이 변화를 갈구하는 성형중독에 걸린 세희.
그녀는 사랑받기 위해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새로움을, 또 스스로를 위한 새로움에 중독되어
있으며. 그것을 끊임없는 성형을 통한 변신과
새로운 접근을 한다. 그러나 결국은 그녀 스스로가
판 함정에 스스로 빠져서 비극을 양산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지독한 자아비판을 하는 영화라는
생각이다.

본질을 보지 않는 외모지상주의, 보이는 것에 대한 집착.
게다가 그것을 너무나 쉽게(?) 바꿀 수 있는 현실.
영화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그렇게 쉽게 바꾸지는 못할 듯.
과도하게 편향된 시각은 이렇게 정신적인 질환으로
전이되는 듯 하다.

그녀가 스스로의 본질을 성장시키기 위한 변화가
아니라 본질을 무시한 변화를 추구하고
상대방과의 소통없는 일방적인 대화의 방식은
우리가 쉽게 범할 수 있는 오류이긴 하지만
이렇게 극단적으로 흘러가게 해서는 안된다.

아마 우리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이미 그렇게 존재되어지고 있는 것 같다.

김기덕의 영화는 모두가 그렇지는 않지만
일련의 정신적질환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인 것 같다.

그가 평범한 하지만 깊이 있는 삶을 다루어 보면
어떤 작품이 나올까 궁금해진다.
뭐 그냥 내 생각이다.

Glory Road 2006


Don Haskins라는 미국의 유명한 농구감독과
그의 첫번째 NCAA champion ship 쟁취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결승전에 선발출전한
모든 선수들이 흑인이었다는 것이다.

돈은 여고농구부 감독으로써 커리어를 쌓아가다
Texas Western이라는 크지 않은 대학의 감독으로
스카웃된다.

하지만 농구부의 지원은 열악하며, 만족할 만한
새로운 선수의 수급도 어렵다.
선수를 구하기 위해서 돌아보던 중 눈에 뜨이는
흑인선수를 구한 후 그는 7명의 흑인을 선수로
뽑아 그들을 조련시켜 ncaa 본선에 진출하게 된다.
하지만 인종차별의 장벽은 그리 만만치 않아
그들은 좌절하기도 하지만 극복하여
유서깊은 명문 켄터키대학과 결승전을 치루게 된다.
돈은 처음으로 결승전에 다섯명의 선발선수를
모두 흑인으로 구성하고 결국은 승리하게 된다.

이 결승전은 미국 스포츠 사상 가장 놀라운 경기였으며
또 중요한 경기들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으며
차별을 능력의 발휘로 넘었기에 후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평가받는 것 같다.

엘파소의 작은 대학 텍사스웨스턴에서
미국을 뒤 흔든 실화에 기초한 재미있게 볼수 있는 영화이다.

돈은 그후 14번의 ncaa 본선에 진출하며
700승 이상을 거두고 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이 된다.

의미가 있는 실화이기에 그 확인만으로도
충분한 감상포인트가 될 수 있는 영화.

영화 자체적으로는 뛰어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실화라는 것 자체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The Incredible story of the team that changed the game forever.
한 팀이 게임자체를 영원히 바꿔버린 믿을 수 없는 이야기.

Nov 11, 2006

Macros Zero 2002



마크로스 시리즈를 본적이 있었다.
아마 그것도 이 작품처럼 ova였을 걸로 기억한다.
제목은 잘 모르겠지만.
재미있게 보았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아는 민메이가 나오는 작품은
기억은 어렴풋이 나지만 인상깊지는 않다.

마크로스에는 중심이 되는 것이 있는 것 같다.
노래가 극의 중심이 되며 전개의 주축역할을 한다.
그리고 삼각관계.
대립이 되는 두 진영의 싸움.
짧긴 하지만 이 작품에도 그것은 다 녹아들어 있는 듯
사라와 마오의 노래, 마안섬 사람들의 노래가
새사람을 깨우며, 이야기의 중심축의 방향타역할을 한다.
삼각관계야. 신, 마오 그리고 사라로 이어지는 것이고
대립각은 두개가 존재한다. 이 작품에서는
1. 반통합연맹가 통합연맹
2. 새사람으로 표현되는 이계 생명체와 추악한 인류.
새사람은 창조주 또는 파괴자로서 기능을 하는 것 같다.

마안섬 사람들은 숲과 바다만 있으면 모든 것이 충족되지만
인류의 편리추구라는 이익추구라는 이기심의 전파는
모든 사람들에게 어떤 강박관념을 준다.
남보다 나아야 한다는, 남이 나보다 나아서는 안된다는
자신이 우월하기 위해서는 남을 짓밟아도 당연하다는
강자존의 법칙을 따르는 것도 같다.
약육강식의 자연법칙과 얼핏 닮아도 보이지만 전혀 아니다.
인간은 배고프지 않아도 남을 해치며 그것을 계획한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마안섬에 들어온 전기와 외부인들은 마안섬을 순수하게 돕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섬사람들에게 이익과 편리를
가르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결국 마안섬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빼앗기며
기화폭탄의 재앙을 맞는다.

기화폭탄, 반응탄등 새사람과 마안을 공격한 무기들의 방향성에서
두 연맹은 동시에 악일 수 밖에 없다.
아니 너무 인간적일 수 밖에 없다. 인간이 걷는 길을
객관적으로 보거나 제3자의 입장(가령, 식물, 동물과 같은)에서
본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악이며 절대악일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게다가 다른 존재를 용납하지 않는 오만과 폐쇄성 역시 말이다.

결국 그들은 새사람으로 상징되어지는 절대적 가치 앞에서
멸망의 길을 향해 고속질주하고 있지만
그들을 구해준 것 역시 몇몇 사람들의 선한 마음이었다.

아마도 인간들은 과거에도 그렇듯이 앞으로도 마찬가지로
스스로를 제약하며 앞으로 나아가려고만 할 것이다.
그 앞날이 어떻게 될런지는 모르겟지만

이런 생각이 얼핏 들었다. 보고 난 후에 말이다.

작품의 내용적으로는 복잡한 내용도 없고
proto-culuture 어쩌구 하는 외계인의 바이러스에 의한
급격한 인간 진화론과 같은 것이 나오며 그에 따라
각각의 마야 잉카 이집트 등의 고대 문명이 기반을
하고 있다는 가정하에 작품은 시작된다.
절대권력과 절대적 가치는 폭력에서 나올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듯이 그들이 남기고 간 마지막 억지력 역시
새사람이라는 궁극의 병기이다.

그것을 둘러싼 이기심의 충돌을 재미있게 보았다.
a-force로 불리는 zero기와 반통연의 기체등
누군가 표현한 것처럼 정확한 뜻은 잘 모르겠지만
간지가 넘치는 외향을 갖추고 있으며
작화의 퀄리티는 그것을 제대로 표현해준다.
비주얼 적인 면에서는 탁월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내용적인 면과 스토리의 전개는 부족하다고 느끼지만 말이다.

마크로스가 앞으로 어떤 식으로 계속 나올런지는 모르겟지만
일본을 대표하는 아니메 프랜차이즈 중 하나인 것 같다.
(건담시리즈, 공각기동대 시리즈, 정도가 생각난다. 앞의 두작품에
비해서 조금 부족함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한 3시간 정도 시간이 있다면 이작품을 보는 것이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아래는 Youtube에 있는 저화질 본편 동영상이다.


Macross Zero ep-01


Macross Zero ep-02


Macross Zero ep-03


Macross Zero ep-04

Macross zero ep-05
1


2


3

Scoop 2006


Woody Allen
Hugh Jackman
Scarlett Johanson



우디 알렌의 영화를 잘은 모르지만 즐겨보는 스타일의 영화는 아니다.
일단 대사가 너무 많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렇게 흥미있게 느껴지지를 않았었기 때문이다.
올해에도 Matchpoint(?)인가 macthstick인가 하는 스칼렛 요한슨이 나오는
영화를 본 기억이 있다. 그게 우디알렌의 작품이라고 기억하는데
그 작품은 내가 생각하는 우디알렌의 스타일하고는 좀 달랐던 것 같다.
하여튼 이 작품을 재미있게 보면서도
앞서 말했듯이 우디알렌의 대사가 너무 많고 빠르기에 따라가기 힘들었다. 젠장.
영문자막을 띄우고서야 이해를 한 것 같다.

저승으로 가는 나룻배를 탄 리포터 조 스트롬비니는 여정 중 만난
피터 라이만이라는 저명한 젊은 귀족의 비서를 만나면서
그가 타로카드 킬러라고 불리우는 연쇄살인범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손드라는 언론을 공부하는 미국학생으로써 영국에 놀러오게 되었는데
스플렌디니라고 불리우는 마술사 시드니 워터맨의 공연의 무대에서
조의 영혼을 만나고 피터라이만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된다.

이에 손드라와 시드니는 피터라이만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고
의혹과 의문을 가져가게 된다. 손드라는 피터와 사랑에 빠지게 되어
의혹자체를 무시하고 시드니만이 계속 조사를 해 그가 연쇄살인범이란
확신을 가지게 된다. 이제 그는 손드라를 구해야 한다.

손드라와 피터는 그의 호수가 있는 별장으로 주말을 보내러 가게 되고
시드니는 그녀를 구하러 익숙하지 않은 영국의 좌측주행에 불구하고
별장으로 차를 몰고 간다.

피터는 자신이 타로카드 킬러는 아니지만, 자신을 협박하는
베테 깁슨이라는 창녀를 죽일 결심으로 타로카드 킬러의 범행을
이용해서 그녀를 죽였음을 고백하고 손드라를 익사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손드라는 살아나게 되고, 시드니는 교통사고로 죽는다.

위와 같은 내용이 치밀하게 구성된 것 같지는 않고
비약도 있으며 과장도 있는 것 같지만 크게 신경쓰이지는 않는다.

어차피 시작부터 저승으로 가는 배에서 돌아온 영혼의 제보에
의하여 멍청해보이는 언론지망생과 마술사의 탐정놀이였으니 말이다.

조가 얻은 잘못 된 정보는 두사람의 인생을 바꾸어버린다.
평범한 마술사로써 살아가는 시드니를 죽음으로 이끌며
피터의 완벽했던 계획을 틀어서 구렁텅이로 밀어넣으며
손드라만이 그녀가 원했던 저널리스트로의 길을 가게 될 것 같다.

그러나 이 모두가 그들이 원했던 결말은 아니란 것이다.
모두가 자신의 의지로 일을 진행시키고 의도대로 하려고 하지만
조는 잘못된 정보와 감만으로 특종을 만들려 했다고도 보일 수 있고,
시드니는 그가 불평했듯이 영국에서 운전하다 죽어버렸다.
피터는 베티의 협박에 의한 궁지에서 벗어날 기회를 놓쳐버렸고
손드라는 백만장자와의 사랑을 망쳐버렸으며,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타인들에 의해 특종을 터뜨리게 된다고
볼수도 있을 것이다.

진실은 진실이 아니며, 거짓은 거짓이 아닐수도 있다는 것이다..
거짓이 진실을 밝혀주기도 하고 진실이 거짓을 만들어낼 수도 있는
인간사의 오묘함을 보여주려고 한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라스트라이프 라스트러브Last life in the Universe 2003


Thailand

Pen Ekratanaruang
Asano Tadanobu


접하기 힘든 태국영화지만 아사노 타다노부라는 이름때문에 보게 되었다.
이 영화로 베니스영화제 남우주연상을 탔다는데, 그렇게 뛰어난지는 모르겠고,
자연스럽게 캐릭터를 살렸다는 느낌을 주는 연기다.
이중성을 가진 묘한 인물을 그의 평범하지 않은 마스크로 제대로 소화했다는 건 인정.
극중에서 잠깐 이치더 킬러의 포스터가 비칠때는 피식 웃었는데
나중에야 켄지가 일본에서 뭘했었나를 짐작케끔 하는 장치로도 보인다.

태국 여배우 참 이쁘게 나온다. 처음에는 별로 였는데 영화를 보면서 점점 이뻐보인다.

Last love in the universe
우주에서의 마지막 사랑인가?
(나중에서야 내가 제목을 잘 못 읽었다는 것을 알았다. love가 아니라 life다.
Last life in the universe. 이 세상 마지막 생명, 존재 정도?)

결벽증과 정리된 것에 대한 어떤 강박관념을 가진 일본인 남자 켄지는 태국에 살고 있다.
지저분하고 정리라는 것은 전혀 모르지만 일본에 갈려고 공부를 하는 태국여인 노이.

두명의 대조적인 삶을 통해서 뭘 보여주려고 하는 걸까?
이 두명은 처음 볼 때부터 철저하게 대조적으로 비춰진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뭔가를 공통적으로 상실했으며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지만 그것을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켄지는 미친 것 같지만 정상적인 삶을 사는 사람으로써
노이는 정상적이지만 평탄치는 않은 삶을 사는 사람으로써 나온다.

자살에의 희망을 가진 켄지는 늘 그렇듯이 다리를 지나가다
노이와 니드 자매가 다투다 교통사고로 니드가 죽는 것을 목격하면서
연결이 된다. 사고 당시 켄지가 두고온 책가방을 노이가
되돌려 주러 오면서 둘은 함께 있게 된다.

물론 켄지는 그의 형의 죽음과 살인이 일어난 장소인
자신의 집으로 갈 생각은 별로 없다.
지저분한 집에서 기거하게 된 켄지는 청소를 하고
곧 일본으로 떠날 노이와 어떤 교감을 하게 되지만
그녀는 월요일이면 일본으로 떠난다.

여기에서 반전이 일어난다.
켄지의 등에 있는 커다란 문신이 드러나면서
그 정체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고
노이가 일본으로 떠나는 날 켄지를 죽이러
오는 야쿠자 킬러들.

확실한 것은 없어 보인다.
켄지가 살아있는 것 같긴 하지만
그가 피는 담배연기와 같이 모호하기만 하다.
증거물을 통해서 이후으 일이란 건 알려주지만
노이에게 온 켄지의 가방과 의 시간순서가
어떻게 배열되어있는지는 모호하기만 하다.
어쨌던 켄지는 유치장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으며
노이는 그를 찾아온 켄지를 웃으며 만나러 가는 듯하다.

대조적인 두 삶과 공통점. 그리고 그들의 사랑
그들은 사랑을 모르기에 상실을 절실히 느끼지 못했다.
사랑을 알면서 그들은 상실을 절감하면서
그것을 보상할 대상을 추구하는지도 모른다.

아마 극중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지문에서 추측해 볼 수 밖에.

도마뱀 한마리가 잠에서 깨어
자신이 세상에 남은
마지막 한마리 도마뱀인걸 알았다
가족과 친구도 모두 죽어버렸다
싫은 사람...
학교에서 도마뱀을 괴롭히던 이들...
다른 도마뱀들까지 모두 가버렸다
마지막 도마뱀은 혼자라서
너무 외롭다
가족과 친구가 그립고...
심지어 적들까지도 그립다
혼자일 바엔 적에게
둘러싸인 것이 차라리 낫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도마뱀은
일몰을 가만히 바라 보았다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아무도 없다면...
삶의 의미가 뭘까...생각했다
하지만 당신이 마지막 도마뱀이 되었을 땐
이런 생각조차 의미가 없다.

상대가 없다면 교감이 없다면
너의 존재는 의미가 없을런지도.
상대와의 교감을 통하여
우리는 사랑을, 증오를,
그리고 미래를 향해 갈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이 영화에서 느낀 거다.

데스 노트 デスノ-ト 前編: 2006



일본에서 근래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만화원작의 영화이다.
나름대로 인기있는 주인공을 캐스팅했으니
일단은 흥미를 끌수 있으며
원작의 복잡하고 왠지 어설퍼 보이는 전개를 어떻게 극복할 까
궁금했지만 기대는 충족되지 않았다.

Death Note란 몇가지 원칙을 가진 사신들의 명부로서
거기에 이름을 적으면 그 사람은 죽게 된다.
사회악과 정의에 의심을 가지던 라이토가
우연히 그 노트를 얻게 되면서
세상은 키라라는 절대적 존재를 맞이하게 된다.

키라를 막으려는 L과 지키려는 키라의 머리싸움이라고
전개는 흘러가지만
내러티브와 개연성, 논리같은 것은 어설프기만 하다.
그것은 원작이나 영화나 마찬가지이다.
난무하는 우연과 추측에 의한 전개
가 훌륭한 소재를 다 갉아먹어버렸다고나 할까?

일정한 개념의 상실과 의문을 참을 수 있다면
재미있게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너무 어설프다.
소재가 모든 것을 덮어줄 수는 없는 것이다.

거기에 배우들은 원작의 카리스마라고 해야하나?
전혀 미치지 못한다.
원작만화에서 가장 인상깊은
라이토의 썩은 미소를 이 배우는 전혀 표현하지 못한다.

하긴 예전부터 내가 선호하지 않는 배우 리스트 상위권에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 싫은 정도는 좋아하는 배우 아츠로의 출연작인
백귀야행을 보기 싫게 할 정도이다. 아마도 동일 배우일 거라 생각한다.

뭐 그래도 원작을 모른다면 또 어는 정도의 어설픔을 당연시한다면
흥미롭게 볼 수도 있다.

Flyboys 2006



스파이더 맨 시리즈의 제임스 프랑코가 출연한
실화에 기초한 세계대전의 초기 영웅 파일롯 이야기란다.

영웅이야기가 다 그렇듯이 전쟁의 아픔이나 심각한 고민은 없다.
전부 다 실화는 아닐 것이고 이것 저것 과장이나 삭제가 있었을 거다.

프랑스에서 파일롯으로 활동하는 미국청년들의 전쟁참전기이다.
이런 저런 사건 속에 공훈을 세우고 이런 사실이 있었다.
뭐 그런 정도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될거다.

이 영화에서 볼 건 제임스 프랑코란 배우가 스파이더맨때부터
생각했던 거지만 꽤 괜찮은 매력과 마스크를 가진
배우란 거다.
그리고 아마도 CG라고 보이는 1차세계대전의 전투기들의
공중전은 정말 볼만하다. 현대의 무시무시한 첨단 전투기
같은 성능은 아니지만 cowboy의 결투를 보는 듯한
왠지 인간적으로 보이는 공중곡예와 전투장면들은
맘에 든다. 그렇다고 해서 살인무기이며 전쟁의 도구일 뿐이긴
하지만 지금의 살벌한 대량살상능력을 가진 무기들에 비해서는
정말 인간적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시원한 하늘과 과거의 공중전등의 액션을 재미있게 보았다.

Nacho Libre 2006

외국의 코믹코드? 개그코드?는 많이 다른것 같다.
우리나라 껄 봐도 내가 그렇게 공감을 많이
하지 않는 걸 보면 꼭 그렇지도 않지만 말이다.

멕시코의 실존인물이라는 것도 같고,
고아와 함께 생활하는 요리사 신부가
레슬리을 통하여 그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이야기다.

별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남들은 재밋다는 글들이 많던데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런가?

현청의 별 (縣廳の星, 2005)

오다 유지, 시바사키 코우
왠만큼 들어본 배우들의 이름이라 보게 된 영화고,
계몽적인 내용의 영화이지만
감동포인트가 약하며
멜로라인은 더욱 약하다.
게다가 장면장면의 전환과 스토리의 전개가
너무 지루할 정도라 권하고 싶지는 않은 영화.
오다유지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는 능청스러움과 특유의 유머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시바사키 코우는 그녀가 보여줄 수 있는 톡톡튀는 매력을
보여주긴 하지만 발전은 없어 보인다.

내용을 약술하자면
지방현청의 엘리트 공무원으로 입사한 사람들이
케어센터를 기획하고 그것을 발판으로 출세하려고 한다.
그것을 포장하기 위한 언론플레이로서
민관 공동의 연수프로젝트에 동원된
노무라는 만천당이라는 대형수퍼에 6개월간 연수를 하게 되며
관료주의와 부정부패, 그리고 자신의 한계.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 것은? 이라는 문제에
부딪히며 진정한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너무 밋밋하다.

Nov 5, 2006

The Departed 2006




Martin Scorsese
Jack Nicholson
Leonardo Dicaprio
Matt Damon
Martin Sheen
Alec Baldwin

감독과 캐스트의 이름값만으로는 그 어느 영화에도 지지 않을 만한 진용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검증된 무간도의 시나리오가 합쳐졌을 때 그걸 기대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대단한 작품이라고까지는 못하겠지만 무간도가 가졌던 재미에 스콜세지의
영화가 나름대로 결합이 된 작품이라는 생각은 든다.

일단 이 영화에서 가장 뛰어난 건 부정할 수 없는 잭니콜슨의 열연이었으며
물론 그에는 좀 많이 딸리긴 하지만 디카프리오의 연기도 괜찮았다.
맷데이먼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정도의 연기를 했다는 느낌.

배우에 대한 위의 느낌들은 원작 배우들의 포스와 연기력에 대조되어서
그러한 느낌이 더 강했던 것 같다. 아무래도
잭니콜슨을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유덕화와 양조위의 내공을 디카프리오와
데이먼이 넘어서지는 못했다는 느낌이 강해서일 것이다.

극의 전개는 마지막을 제외하고는 원작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원작에 비해 자세한 설명이 좀 많이 결여되고 극중 진행시간의 텀이
짧아서인지 숨가쁘게 뛰어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보면서도 영화를 계속 대조하고 비교해볼 수 밖에 없었지만
정신과 의사와의 겹쳐진 로맨스,
빌리의 경찰학교 동기인 흑인이 동기임을 확인해주는 장면.
그리고 원작에 비해 두 주인공의 고뇌가 많이 축소되고 약화된 것이
극의 전개와 이해에 혼란을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마지막에 콜린 마저 디그넘이 죽여버림으로써 속편의 여지를 아예
없어버린 건 아마도 스콜세지의 의도일 것이다.

이 영화가 홍콩의 원작 무간도에 비해서 아주 훌륭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빌리의 아파트에서 바라본 금빛지붕의 의사당 모습에서
삶의 무상함과 제목 그대로 모두가 죽어버린 현실을 보여주는 것에서
이 작품이 스콜세지였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기대가 커서인지는 모르지만 흡족하지는 않은
그렇다고 실망스럽지도 않은 작품이다.

Tokyo Zombie 2005


아사노 타다노부가 주인공이라 봤지만
한마디로 내 취향은 아닌 것 같다.
일본의 황당만화같은 구성의 영화이다.


인간의 이기심과 오만이 부른 블랙후지는 좀비를 탄생시키고
토쿄는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인간의 이기심과 추악함은
계급과 착취를 양산하고
그 속에 순수한 유술청년과 그 스승의
자신의 강함을 찾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뭐 별로 와 닿지는 않는다.
솔직히 shit이다.
나와는 전혀 맞지 않는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