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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 24, 2006

Lemming 2005

레밍이 스칸다나비아 반도에서만
산다는 것을 알게 해준 영화.

공포영화도 아니고?
환상특급도 아니고,
내게는 조금 애매했던 영화.

홈오토메이션 디자이너로 일하는
알랑은 사랑스러운 아내 베네딕뜨와
행복하게 살고 있다.

회사의 간부와 그의 아내 앨리스를
초대하여 식사를 하던중 앨리스의
기이한 행동으로 인하여 악몽은 시작된다.

알랑은 고장난 싱크대를 고치던 중
쥐와 비슷한 동물을 꺼내게 되고
베네딕뜨는 동물병원에서 그것이
레밍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앨리스는 알랑에게 기이한 행동을
한 후 그들의 집에 찾아와서
자살해버리는 황당한 시츄에이션.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환각인지
실제인지 모를 상황이 계속된다.
그는 출장도중 아내가 걱정이 되어
돌아왔는데 집이 레밍천지이고
그로 인해서 병원에 입원하는데
깨어보니 교통사고랜다.

빌린 별장에서 갑자기 사라져버린
베네딕뜨, 갑자기 그를 떠나서
회사간부넘과 눈이 맞아버린 아내.

폐인이 되어가는 그에게
찾아온 앨리스
아내를 찾고 싶냐고 묻고는
집열쇠를 하나 준다.

간부넘을 죽이고 아내를
데려오고 집을 폭파시키고
돌아오니
아내는 이상한 꿈을 꾸었댄다.

실제와 혼재하는 악몽들
악몽을 혼란시키는 실제.

어느 것이 꿈이고 현실인지?
를 애매하게 만들어버린다.

스칸다나비아에서만 사는
레밍이 이 집에 나타난
이유는 허망하게 밝혀지고,
그럼 레밍떼와 부부의 악몽은?
자살로 판정되어지는 앨리스부부의 현실은?

사람에 따라 재미있게 볼수도 있고,
전혀 아닐수도 있는 영화인 것 같다.
그럼 나는?
글쎄 나름 재미있게 보았던 것 같다.
깔끔한 공포판타지.

Nov 20, 2006

四日間の奇蹟 Miracle in four days 2005


4일간의 기적.
요시자와 히데타카


요시자와 히데타카 주연의 영화이다.
내가 이 배우를 기억하는 것은
닥터고토 진료소 라는 드라마를 통해서였고
또 영화 Alway 3번가의 석양에서도 특이한 캐릭터로 접했었다.

키사라기는 유명한 천재피아니스트였으나 총격사고로 손가락을 다치고
그 사고를 통해서 정박아인 치오리를 입양하게 된다.
그러던 중 그는 치오리의 음악적재능을 알게 되고 그것을 발전시킨다.

마리코는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이혼을 하고
뇌질환 전문 요양소에서 모든 사람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그녀는 첫사랑인 키사리기와 치오리를 요양소로 초청하게 된다
마리코는 치오리와 마당에서 놀던 중 낙뢰사고로 크게 다치게 되고
치오리와 몸이 바껴버린다.

그녀는 죽음에 대해서 고민하고 갈등하지만
결국 그녀에게 주어진 4일간의 시간을 통하여
그녀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을 느끼고
또한 치오리와 키사라기에게 마음의 상처를 회복시키며
자신의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만족스럽게

내용의 소재는 얼핏 비밀이라는 일본영화와도
비슷하게 보일 수 있지만 파격적이지는 않다.
다만 자신을 되돌아볼수 있는 4일간의 기회가
당신에게 주어진다면, 또 그것을 만약 선택할수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냥 평이한 영화지만 나름대로 재미있게 보았다.

Nov 17, 2006

Be with me 2005




Singpore

Eric Khoo

집중해서 자세하게 보이진 않았다.
영화를 보면서 얼핏 떠올렸던 것은 릴리슈슈와 느낌이 비슷하네하는
단편적인 느낌이었다. 뭐 주제는 다른 것 같지만 말이다.
아마도 릴리슈슈의 넷상의 주고받는 리플과 여기에서의
메신저를 통한 의사교환, SMS를 통한 대화,
수동타자기를 통한 자서전식의 글
끝내 전해주지 못한 편지지의 글들.
점자로 읽는 뉴욕타임즈,

처음에는 대화, 소통, 단절, 문명, 뭐 그런 것에 대한 생각이었다.
실제적인 대화는 극히 드물며 자신의 의사를 문자로 전송할 뿐이다.
그리고 쳐다보다는 것이 전부인 왠지 수동적인 느낌을 받았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기록하고, 훔쳐보고, 피하는 것 같다.
뭔가를 지극히 갈구하지만 직접적인 표현을 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슬픔같은 것을 느꼈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삶의 편이성은 증대되고 있지만,
실제적인 인간의 소통은 더욱 줄어들고 외로워지고 있지 않은가?
아마 예전 같으면 직접 가서 만나고 이야기하고 그럴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단지 문자를 보내고 쳐다보고 상대방이 답하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게 길들여지고 있는 느낌이랄까?
인간이 기술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문명이, 기술이 인간을 이용하고 있는 것 같다.

소통의 갈구, 그러나 소통의 부재,
같이 있고 싶어하지만 그것을 직접적으로 표현조차 못한다.
단지 화면에, 활자로 보이는 것들에 묶여서
그것만으로 상대를, 자신을 판단하고
또한 다가서지 못하고 훔쳐볼수 밖에 없는
어이없는 관음증에 우리들은 빠져들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타자로 찍히는 활자의 마지막 말.
Be with me.
하고 싶은 말은 그것이 전부인데
그것조차 직접할 수 없는, 너무 어려운 우리들의 자화상을
그리고 있는 것 같다.

생활의 편리, 편이 때문에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한 번쯤은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현대를 살아가면서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들.
우리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오히려 진정한 소통의 부재에 몰려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인간은 점점 더 외로워지고 있다.
함께 하고 싶다는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영화 자체는 재미가 없다.
관념적이기만 하고, 연결이 잘 안되는 느낌.

하지만 생각할 여지는 충분히 있는 영화.
한가지 이야기를 너무 흐트려 놓았다는 느낌이 조금은 든다.

그래도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내가 느낀것이라면 그 의미에 동감한다.

Nov 11, 2006

현청의 별 (縣廳の星, 2005)

오다 유지, 시바사키 코우
왠만큼 들어본 배우들의 이름이라 보게 된 영화고,
계몽적인 내용의 영화이지만
감동포인트가 약하며
멜로라인은 더욱 약하다.
게다가 장면장면의 전환과 스토리의 전개가
너무 지루할 정도라 권하고 싶지는 않은 영화.
오다유지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는 능청스러움과 특유의 유머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시바사키 코우는 그녀가 보여줄 수 있는 톡톡튀는 매력을
보여주긴 하지만 발전은 없어 보인다.

내용을 약술하자면
지방현청의 엘리트 공무원으로 입사한 사람들이
케어센터를 기획하고 그것을 발판으로 출세하려고 한다.
그것을 포장하기 위한 언론플레이로서
민관 공동의 연수프로젝트에 동원된
노무라는 만천당이라는 대형수퍼에 6개월간 연수를 하게 되며
관료주의와 부정부패, 그리고 자신의 한계.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 것은? 이라는 문제에
부딪히며 진정한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너무 밋밋하다.

Nov 5, 2006

Tokyo Zombie 2005


아사노 타다노부가 주인공이라 봤지만
한마디로 내 취향은 아닌 것 같다.
일본의 황당만화같은 구성의 영화이다.


인간의 이기심과 오만이 부른 블랙후지는 좀비를 탄생시키고
토쿄는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인간의 이기심과 추악함은
계급과 착취를 양산하고
그 속에 순수한 유술청년과 그 스승의
자신의 강함을 찾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뭐 별로 와 닿지는 않는다.
솔직히 shit이다.
나와는 전혀 맞지 않는 영화.

Oct 29, 2006

Barefoot, Barfuss 2005


Knoking on heaven's door의 속편격이란 말에 봤다.

위 영화는 전혀 기억하지못하면서도 말이다.

이 영화는 사랑에 관한 영화이다.

외로운 두 사회 부적응자에게 필요한 것은?

교육, 치료와 같은 사회적인 것이 아니다.

사랑이란 말을 하고 있다.

라일라는 어려서부터 엄마에게 갇혀서 지냈으며

자신의 몸을 누군가 건드리면 발작을 일으킨다.

그녀의 엄마는 죽었다. 하지만 그녀는 엄마를 그리워한다.

닉은 자신의 과거에서 도망쳐 뭔가를 해보려고 하지만

할수가 없다.

이런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났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주고 받는다.

사랑은 학습되는 것도 아니고, 일부러 주는 것도 아니다.

인간은 관계를 맺으면서 상호작용을 하고

그 정점에 있는 것이 사랑이다.

끌릴 수 밖에 없다.

닉은 라일라가 사회에 적응하는 것을 도와주면서

스스로 사회에 적응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으며

더이상 도망치지 않는 것을 배운다.

쉽지 않은 내용을 간단하게 감각적으로

또한 재미있게 만든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Oct 13, 2006

Don't Come Knocking 2005


directed by Wim Wenders
screenplay by Sam Shepard
Sam Shepard(Howard Spencer)
Jessica Lange(Dorin)
Tim Roth
Sarah Polley(as Sky)
Gabriel Mann



빔벤더스, 샘세퍼드
귀에 조금은 익은 이름이긴 하지만 잘은 모르는 사람들.
Sarah Polley가 이쁘다. 나없는 내 인생을 어제 봤는데 꽤 독특한 매력이 있다.

영화촬영하다 갑자기 도망가버리는 배우.
30년만에 고향의 어머니를 찾아간다.
30년간 그는 신문의 가십란을 장식하면서 Badboy로 살아왔다.
아마도 문득 스스로가 지겨워진 듯 하다.
어머니에게서 자신의 아이가 있다는 말을 듣고 아무 생각없이
찾으러간다. 아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싫은 부분을 발견하고
두 부자는 서로를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그에게는 또 다른 딸이 있었으며 그 딸은 두 부자와 달리
바른 마음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스카이(딸)의 노력에 힘입어 아마도 그들은 서로를 찾아서
가정을 이룰 듯하다.

망나니로 살아온 자신을 벗어버리고 싶은 하워드는 한 때 잘나갔던 배우이지만
30년간 가족, 친구등 모든 지인들과 인연을 끊고 살아온다.
그의 귀향과 아들과 딸을 찾고 아버지를 찾는이야기이다.

우리는 자주 잊는다. 정말 중요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아무 생각없이 있다보면
어느새 잊혀지고 그 존재했었던 기억조차 없어진다.
소중한 것들은 항상 기억하고 살아가야 하나보다.

생각보다는 재미있게 본 영화.
신파가 아니라서 좋았다는 생각.
갑자기 생긴 아버지와 아들 서로의 어색함과
아버지를 알고 있었던 딸의 차분함이 그런대로 잘 묘사되었다고 생각한다.

간만에 이뻐보이는 외국배우 Sarah Polley를 알게 되어서 더 좋았다.
(물론 my life without me에서도 나오지만 이 영화에서 더 이쁘다)

ps . earl 이 부르는 노래들도 좋았다.


Oct 5, 2006

Love+Hate 2005

파키스탄인이 영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파키스탄 두 남매의 사랑찾기.
거리를 방황하며 원나잇스탠드를 일삼는 파키스탄인 오빠.
거리에서 사랑과 재미를 찾아나선 영국여자.
서로에게 끌리지만 회교도와 인종이란 장벽을 느끼는영국소년과 파키스탄인 소녀 동생.
어차피 결말은 파국 아니면, 도피일꺼다.

물론 해피엔딩도 있겠지만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무슬림으로서 서방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사랑을 찾는다는 것.
뭐 그런 이야기이다.

사람이 사람을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기에서 비롯되어지는 수용과 사랑의 방식들.뭐 그렇다는 말이다.
내가 절실히 느끼지 못하는 부분이라 영화가 주는 메시지 또한 마찬가지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인이 서방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동남아 사람들이 살아간다는 정도의 느낌으로 볼수 있을 듯하다.
미루어 볼수 있다는 것이지같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힘들 것이다.
영화에서의 상황을 우리나라에 대입시켜 본다면 말이다.

Oct 2, 2006

SuKiDa.好きだ.2005

Miyajaki Aoi. Eita
눈에 익은 두 배우가 나오는 영화.
웬지 무미건조한 추억이 결여된 앨범과 그 추억을 회상하고 있는 현실을 보았다는 느낌이다.
영화는 솔직히 지루하고, 반복되어지는 이미지만으로 이끌어져간다.
이 영화에 대한 판단은 잠시 유보.

Sep 22, 2006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디언.The World's Fastest Indian


Anthony hopkins

인디안 이야기인줄 알고 안 봤었다.
보니까 인디안이라는 1920년 오토바이의 최고속 도전기였다.

버트 먼로와 그의 인디언이 세운 1967년 보너빌에서 세운
최고속 기록은 아직까지 안 깨지고 있다고 한다.

삶의 목표와 열정은 나이에 관계 없으며
원하고자 하는 바를 성취하는 것이 최상의 미덕이다.
뭐 이런 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버트 먼로의 실제삶이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영화에서처럼 아름답고 훈훈함으로 가득차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기록은 아직까지 남아 있고
모두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이야기이다.

너무 동화적이긴 하지만 얼마던지 참을 수 있다.
안소니 홉킨스의 괴짜 캐릭터 연기는 탁월했다고 느낀다.
뭐 이미 연기는 어떤 경지에 들어있는 노배우이기도 하고
이론을 제기하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현대판 동화의 탄생이라고나 할까?
볼만하다.

오늘은 모터바이크 영화만 연속으로 두편을 본 것 같다.^^

Vers Le Sud 남쪽을 향해

France

Laurent Cantet

브랜다, 엘렌, 수 등 일련의 중년 여인들은 아이티를 찾는다.
쾌락을 찾아서, 사회생활에서 찾지 못한 어떤 감흥을 찾아서
각자의 이유를 찾아서 아이티로 여행을 온다.

브랜다는 3년 만에 아이티를 다시 방문한다.
3년전 45살의 나이로 처음 느껴본 오르가즘을 잊지 못한 이유도 있고
더 이상 사회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엘렌은 55살의 나이로 철저히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 이곳을 찾는다는 것을
숨기지 않으며, 일종의 소유욕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엘렌과 같이 지내는 소년(?이름을 까먹었다)은 과거에 브랜다에게 오르가즘을 주었었다.
브랜다는 소년에게 빠지고 그와 사랑에 빠진 것으로 생각을 하게 된다.
엘렌은 알 수 없는 질투심과 소유욕을 느끼게 되고

소년은 그 스스로의 어떤 사정으로 인하여 해변을 방황하며 살아가지만,
어떤 연유로 인하여 죽음을 당하게 된다.

엘렌과 브랜다는 일종의 책임을 느끼게 된다.
엘렌은 아이티를 떠나고
브랜다는 남은채로 아름다운 캐러비안해를 둘러볼 생각을 가지게 된다.

나쁘게 말하면 권태와 삶에 찌든 중년 여인들의 쾌락탐험기이고,
좋게 말하면 중년여인들이 느끼는 그들의 상실감과 여자로서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영화이다.

솔직히 썩 와 닿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흥미있게 보았다.

ps. 왜 언어가 두개 짬뽕이란 말이냐? 불어면 불어로 영어면 영어로 할 것이지
게다가 영어에 영어 자막은 왜 말하고 틀린데. 그래서 불어의 영어자막도
별 믿음이 안가고 뭔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천리주단기 Riding Alone for thousands of miles 2005




장이모우

다카쿠라 켄

오랜시간 아들과 연락을 끊고 지내던 다카다는
아들의 와병소식을 듣고 찾아가지만 만나지 못한다.

며느리에게서 받은 비디오테입을 통하여
그는 아들이 원하던 중국경극의 촬여을 위해 중국으로 떠난다.

경극배우인 리자밍은 술먹고 동료를 상하게 하여 복역중이라
그의 경극 공연을 찍지 못하게 된다.
교도소로 찾아가 촬여을 하려고 하지만
리자밍은 자신의 아들 생각에 울어버리고 공연을 하지 못한다.
다카다는 리자밍의 아들을 데리고 오려고 생각하여
석촌이라는 곳을 찾아 아들인 양양을 데리고 오지만
양양은 아버지를 만나기릉 원하지 않는다.

양양과 길을 잃은 하룻 동안 그의 아들 켄이치는
병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만
그에게 유언을 남긴다. 이제야 화해를 하게 된 것이다.

다시 교도소로 리자밍을 찾아 온 다카다는 양양의 사진을
리자밍에게 보여주고. 리자밍은 다카다를 위해 공연을 한다.

장이모우가 다카쿠라 켄이란 자신의 우상이었던 일본배우와의
공연을 위해 만든 영화라고 들었는데, 솔직히 이 배우를 보기는
몇 번 본 것 같기도 하다.

하여튼 중국과 일본의 두명의 아버지와 두명의 아들 이야기이다.
중국의 아버지는 감성적이고 스스로를 마음대로 표현하고 살지만
아들과의 관계는 그렇지 못하다.
일본의 아버지는 무뚝뚝하며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않는다.
아들과의 관계 또한 마찬가지이다.

결국 이들을 연결하고 극을 이끌어가는 것은
아들이라는 매개체, 부정의 표현이며 결국은 소통의 문제일 것이다

두 사람은 결국 아들을 만나지 못한다.
하지만 이들은 결국 사진, 유언, 사람들의 모습을 통하여
서로가 소통하게 되며 이해하게 된다.
물론 그것이 굉장히 자기 중심적이고 직접적인 교류가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마도 이들은 만족했으리라 믿어진다.

영화를 보면서 든 생각은 배우를 통해서도 표현되어지기도
하고 극 자체를 통해서도 느껴지는 굉장할 정도의 절제미였다.

교도소에서 사진을 보고 울던 재소자와 리자밍의 모습에서도
난 엄격한 절제를 느꼈다. 아마도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직접적인 소통이 아닌, 하나를 건너 전해진 간접적인 형태의
교류라는 것과 또한 극의 흐름, 그리고 다카쿠라 켄의 절제된 연기와 캐릭터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 같다.

장이모의 초기 작품들과도 다르지만, 최근의 무협블록버스트들을 통한
넘쳐 흐르던 과잉영상과 부족했던 감성을 벗어난 것 같다는 느낌이다.

천리주단기는 관우가 친구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수천리에 이르는 길을
혼자 달려가는 이야기라고 한다.

경극의 한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이 작품의 제목이기도 하다.
관우가 아닌 다카다가 일본에서 중국으로, 중국 내 이곳 저곳을
찾아다니면서의 감정과 이해의 폭과 과정을 같이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절제미와 억눌림의 선상에서 어떤 식으로 느끼느냐가
이 영화를 판단하거나 호오를 결정할 것 같다.

나는 억눌렸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볼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위에 두 포스터가 있지만 오리지널 포스터 보다 더 나은 한국판 포스터인것 같다.

Sep 19, 2006

An Unfinished Life 2005

< Lasse Halstrom
Robert RedfordMorgan FreemanJeniffer Lopez

There is reason for everthing 이라는 마지막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처음엔 가정폭력에 관한 영화인 줄 알았다.
다 보고는 상실에 따른 가족의 삶과 그 극복을 다룬 것이라고 느꼈다.
진(J. Lo)은 딸 그리프와 함께 살고 있는데 애인의 폭력에 시달려 결국은 도피를 한다. 도피를 한 곳은 시아버지가 살고 있는 와이오밍.
아이너(R.Redford)는 미치(M.Freeman)와 함께 농장에서 살고 있다.미치는 곰의 공격에 당해서 심각한 상처를 가지고 있다.
아이너는 돌아온 진을 미워한다. 이유는 아들의 상실을 그녀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손녀와의 삶과 진의 문제를 해결해나가면서 조금씩 가까워지고 네 사람은 하나의 가족이 되어나가는 이야기이다.
이야기를 엄청 줄여보았다.
3명의 중요한 캐릭터는 각각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아이너는 아들의 상실로 인해 스스로의 삶을 포기한 상태이다.
미치는 곰의 공격으로 인한 상처와 아이너의 자기방조적 삶을 조용히 보고 있기만 한다.
진은 남편의 죽음이 자신때문이라고 자책하고 있다.
또 곰을 잡고 풀어주는 과정과 가족의 해체와 재성립을 잘 조화시켜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말고는 당신의 선택이며
그에 따라 삶 또한 변화해간다.

Sep 11, 2006

I am a Sex Addict



솔직히 제목보고 봤다. 인정한다.
진짜 섹스중독증에 걸린 이야기였다.
흥미있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은 결혼식 촬영이었다.
좋게 생각해보려고 노력을 조금은 했지만
결론은 자기고백과 극복이었으며
이 결혼에 대한 의미부여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까지가 솔직한 느낌이었고
여기서 글을 끝낼 수도 있겠지만
보면서 들었던 여러가지 생각들을 적어 보려고 한다.
카베이는 필름메이커이다.
그는 Prostitute Festish이다. 창녀집착증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Sext Addict 섹스 중독의 한 종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많은 여자를 만난다.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을 두고도
그는 자신의 섹스중독증을 유지하며
또 그것을 파트너에게 정직하게 말하며 그것을 이해해주기 또한 바라고 있다.
솔직히 미친 놈 아닌가? 과거의 일도 아니고 현재진행인 것을 말이다.
monogamy 일부 일처제라고 단순히 번역할 수도 있는 현재의 시스템상에서
그것을 받아들이기는 거의 힘들 것이다.
또 그것이 당연시되고, 법적으로나 관습적으로 정착이 되어왔기에 말이다.
그것으로 인해 그는 여러번 결혼이 파탄에 이르고, 정상적인 관계의 유지가
어렵다. 그는 자신의 페티쉬를 상대에게 솔직하게 말하고 또 이해를 바라면서도
상대방의 외도나, 자신 이외의 관계에는 강한 질투와 소유욕을 또한 가진다.
이런 이율배반이라니. 그러나 그것은 모든 남자들, 아니 사람들이 가지는 당연한 것
일런지도 모르겠다. 뭐 나 또한 그런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엄격한 잣대를 대기 어렵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고
기본적인 인간의 소유적 본능에 기인하기도 할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안다.
자신이 사겨왔던 모든 여자들을 자신은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섹스중독증이며 알 수 없는 집착에 의해 다른 여자(창녀)를 찾는다.
창녀라는 표현이 적당한지는 모르겠다. 국어로도 여러가지 말이 있겠지만
대부분 비하의 뜻 비슷하게 느껴지니 말이다.
따라서 Postitute이란 말을 쓰는게 나을 듯 하다
(whore, slut등의 말은 비하의 의미가 강하다고 알고 있다 화냥년이나 걸레 정도의 의미를 가진다)
이 영화는 거의 셀프카메라와 재현드라마 그리고 다큐적인 성향을 띄기도 하지만
셀프카메라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전혀 객관적인 시각이 없다고 볼 수도 있다.
철저히 자기 중심적이며 이기적이다.
상대방의 표현은 단지 싸우고 힘들어하고 알코홀릭의 성향만 보여줌으로써
자신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 같은 느낌이다.
모든 갈등의 원인은 자신의 섹스중독증인데 말이다.
그냥 그렇게 끝이 났으면 인간본성적인 측면에서, 아니면 심리학적 측면에서
어떤 접근이 가능했을런지도 모르겠지만
monogamy에 대한 의문도, 섹스중독증에 대한 해결 방법 또는 그 근원에 대해서는
접근이 없다. 단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일반화가 힘들다. 섹스중독증에 걸린 여러가지 사람의 이야기를
치료모임에서 잠깐 언급하지만 그것은 별 의미가 없다.
결국 그는 한 여자와 결혼하면서 그녀를 만나면서
끊임없이 싸우면서 그것을 해결했다고 한다.
해결이 된것일까?
영화가 결론을 꼭 내릴 필요는 없다.
모든 의문과 문제들만 던져놓고 자신은 빠져버린다는 느낌을 가졌다.
그래 결혼 생활 행복하게 해라.
그 말을 듣기를 원하는가?
일부일처제란 관습적, 법률적 제도와 섹스 중독증이란 병과의 충돌을
제기 했으면 그 에 따른 다른 사람의 시각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위 관습과 병은 개인적 소사로 치부될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지 않은가?
결론은 상대와의 관계, 사랑이 해결한다는 듯한 결론이 나오면서도
그는 과거의 여자들을 모두 사랑했다고 한다.
사랑의 질이 틀린 건가? 모르겠다.
그냥 드는 생각이다.
사랑을 하는 방법에 있어 사람들은 모두 다르겠지만
어떤 제도와 약속에 얽매이면서 다 가질 수는 없을 듯 하다.
일탈할 수도 벗어날 수도 있다.
그 제도를 인정했으면 따르는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끊임없이 제도를 부정하는 행동을 했으면서도
또 다시 그 제도로 회귀하는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을 뿐이다.
쳇 또 뭔가 이야기가 새어 가는 듯 하지만
이 작품이 영화라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많은 시도가 있었던 듯 하지만 새롭지는 않다.
그리고 설득력이 있지도 않다.
그냥 셀프 결혼식 촬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끝..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エリ エリ レマ サバクタニ: Eli, Eli, Lema Sabachtani?, 2005)

Eli, Eli, Lema Sabachtani?
주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내가 알기론,
이 말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 하는 말이다.
많은 해석이 있을 수 있는 말이다.
예수가 모두의 죄를 대속하는 고통의 끝 장면에서 나오는 말이다.
그는 우리의 모든 죄를 어린 양의 피로 제사장에서 속죄하듯이
그 자신의 피로써 모든 죄를 정화했다.
대충 위의 글 정도의 기본 상식만 가지고 영화를 보자.
더 이상 알고 싶지 않기도 하고
솔직히 그리스도교(기독교라는 표현이 정확하지 않다는 말도 있더라)에 대해선
별로 말하고 싶지가 않다. 또 이 영화가 어떤 종교적인 의미는 없으리라 생각해서이다.
浅野忠信。宮崎あおい
아사노 타다노부, 미야자키 아오이 주연의 영화이다.
때는 정확지 않지만 레밍병이라는 자살을 일으키는 병이 창궐하여
일본에서만 300만명이 죽음에 이르렀다.
미즈이와 아스하라는 기이한 잡음과 소음으로 이루어진 음악을 하는
두 사람의 음악이 이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소문에
자신의 손녀(미야자키 아오이)의 병을 고치기 위해 찾아 온 부호
미즈이는 레밍병으로 연인을 잃었으며
아스하라는 레밍병을 앓고 있다.
자신들의 음악이 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병원균의 먹이라는 것을 둘은 알고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살고자 하는 의지이다라고 말을 한다.
아스하라는 갑자기 자살을 해버리고
미즈이는 그를 화장한다.
미즈이는 손녀를 위해 자신의 연인을 치료하듯이
그녀에게 못 해줬던 연주를 손녀에게 대신해 준다.
예수가 인간의 죄를 대속하듯이 말이다.
결국 바뀐 것은 없다.
손녀가 계속 살아갈런지 죽음을 택할런지 말이다.
그 음악을 같이 들었던 탐정은 집으로 가는 도중
갑자기 자살해버린다.
결국 그들의 음악은 뭘까?
치료일까? 아니면 오히려 병의 발원일런지도 모른다.
그들의 소음은 삶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는 건 아닐까?
누구나 가지고 있는 어떤 메카니즘을 촉발시켜서
생과 사를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의 문제일런지도.
대충 위와 같이 보았다.
결국 죽음을 택하고 죄를 대신 사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런지도
모르겠다. 삶이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인것이다.
삶이 가치가 있는 한 나를 찾아오라고 전하는 미즈이의 말을 생각해 본다면 말이다.
종교에서 제물을 필요로 하는 것은 거의 희생양
즉 자신의 죄를 누군가에게
덮어 씌우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뭔가를 희생하고 버려가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냥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솔직히 영화 보면서는 아 거의 두시간 동안 잡음과 소음 열라 들었네 하는 생각뿐이었다.
아무리 세상이 잡음과 소음으로 이루어졌다고는 하지만
부조화스러운 잡음과 소음이 진정한 자연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우리는 그것을 참기 어려워 하지만 말이다.
위 종교에 대한 부분은 그냥 얼핏 들었던 말에 내생각을 조금 붙인 것이다.(잘못 알고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적다보니 영화보다는 다른 이야기를 적은 것 같다. 쩝.

니라이카나이로부터 온 편지 [ニライカナイからの手紙]


蒼井優(아오이 유우)가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본 영화.
난 역시 이 배우를 좋아한게 아니라, 하나와 앨리스의
앨리스란 캐릭터를 좋아했던 것 같다.
물론 여전히 이쁘긴 하다.
하지만 그 전에 본 야오이 유우의 영화처럼 크게 느낌이 오진 않았다.
영화는 그냥 평이하다.
감정이 메말라서인지 몰라도, 별로 감동스럽지도 않고
좀 억지스러운 거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좋게 보자면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에게 성장할때까지
엄마의 존재를 잊어버리지 않게 하겠다는 좋은 의도겠지만
그건 최상의 경우를 가정한 것일 뿐이고,
나쁘게 보자면 엄마의 이기심으로 인하여
후키(야오이 유우)를 모두가 속이는 것 아닌가?
13년동안 속이는 사람들이나
13년동안 속는 사람이나,
만약 가능하다면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단 영화니까 넘어가자. 영화의 설정 자체가 그러하니 말이다.
14통의 편지가 후키에게 힘이 되고 성장의 밑바탕이 되었다면
다행이다. 또 그 과정에 대해서 후키가 잘 받아들였으니 말이다.
아 물론 여전히 억지스럽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런데 후키에게는 1년에 한 번 오는 엄마의 편지가 전부였을까?
1년이란 시간은 짧다면 짧을 수 있는 기간이지만
충분히 긴 시간이기도 하다.
1년 내내 편지를 생각하지는 않았을 텐데.
편지와 관계된 이외 후키의 성장사는 전혀 없다는 게
어떤 갈등도 없다는 것이 이 영화를 지루하게 밋밋하게 만드는 것 같다.
아 물론 도쿄로 떠날때의 충돌이 있긴 하다.
그 전까지 뭔가에 억눌린 듯한 후키는
과거의 엄마로부터의 편지에 힘을 받아
도쿄로 떠난다.
자신의 일을 성취한다.
그리고 사실을 안다.
마지막엔 모든 것과 화해를 하고 감사를 한다.
엄마의 편지와 후키의 성장과정을 끝에 하나씩 되짚어가면서
보여주긴 하지만 왠지 공허하다고나 할까?
뻔한 스토리임을 이미 다 알고 있는데 확인해주는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개인적으론 극의 전개순서가 왠지 맘에 들지 않고, 편지와 성장의 과정을
쭈욱 늘여서 보여준 것도 좀 그러하다.
뭐 거기에 감독의 의도가 있긴 하겠지만, 왠지 와닿지 않는다는 느낌.
단지 유우의 캐릭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가 커서 그럴까?
아직도 앨리스를 찾고 있는건가? 그럼 안되는데. ^^

Sep 5, 2006

천국을 향하여 Paradise Now

하니 아브아사드


위의 한국포스터 카피는 마음에 안든다.
Paradise now
천국은 어디인가? 천국 지금.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현 지구의 종교갈등의 최전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팔레스타인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유대인에게 그들은 분명 억압을 받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테러를 한다. 왜 할까?
자유와 정의를 위해서?
자이드는 말한다.
존엄성이 없는 삶은 굴욕이라고.
그들의 삶은 자유가 없는 감옥속에서 존엄을 무시당하는 삶이다.
솔직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뿌리깊은 갈등과 첨예한 이익의 대립은
어디서 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모른다.
따라서 영화자체만 이야기하고 느낀 것을 적어내려가는 수 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조금은 정리 될것이라 믿으면서 말이다.

이스라엘군이 경비를 서고 있는 곳에 수하가 귀향을 한다.
자이드와 할레드는 팔레스타인 점령지구에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다.
차량정비를 하던 그들은 저항조직에 의해 순교자로서 선택을 받으며
그것을 기꺼이 받아 들인다.
자이드는 새벽에 수하를 방문하고 약간의 대화를 하게 된다.
그들이 존경하는 영웅 "아잠"의 딸인 수하는 테러가 아닌 평화로운 방법을
선호하며 공존하는 삶이야 말로 진정한 것이라고 믿는다.
자이드와 할레드는 순교자의 비디오를 찍은 후 텔아비브로 떠나가지만
이스라엘 군에 발각이 되면서 자이드는 고립이 되어버리고
할레드는 돌아와서 자이드를 찾기 위해서 노력한다.
자이드는 철조망을 다시 넘어 버스에서 폭탄테러를 하려고 하지만
그 전날 수하와의 대화와 버스에 탄 어린아이의 모습에 그것을 포기한다
자이드는 다시 점령지구로 돌아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할레드와의 만남은 계속 엇갈리기만 한다.
자이드는 계속 고민하고 있다. 어느 것이 옳은 것인가?
할레드는 아직까지 고민하고 있지 않다.
자이드는 수하를 다시 만나고 그의 트라우마라고 할 수 있는 매국노 아버지의 처형과
수하의 아버지인 영웅 아잠을 이야기 한다. 그가 철조망을 처음으로 넘어서 본 것은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는 팔레스타인과 친인을 둘러 봄으로써
현실을 보고자 하는 것이다. 수하와의 키스 후 그는 떠난다.
자레드를 기다리던 할레드는 수하와 만나고 그가 있을 무덤을 향해 쫓아간다.
가는 도중 수하와의 이야기를 통하여 조금은 변한다.
자이드는 할레드와 저항군 본부로 돌아와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자신은 점령지구를 벗어나 본 적이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 뿐이다.
자이드와 할레드는 텔아비브를 차를 타고 지나간다. 그들이 본 것은
다른 세상이다. 발전된 도시와 자본적 풍요를 보게 된다.
할레드는 자이드를 설득해서 다시 돌아가려고 하지만
자이드만이 텔아비브에 남게 된다.

내가 기억하는 모든 스토리의 전개이다.
간단히 하자면 자이드와 할레드는 팔레스타인에 사는 젊은이인데 이스라엘 폭탄테러의 순교자로
선택을 받고 그것을 실천하는 과정일 것이다.

솔직히 양측의 배경과 그에 대한 지식이 부족함은 앞서도 말했고 그에 따라
영화에서 보여지는 대칭축을 따라가 볼 수 밖에 없었다.

첫째 가장 기본적인 것은 뭐라고 해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라는 점령자와 피점령자의 관계이다.
양측은 모두 자유와 평화를 원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의 선택과 결말은 항상 유혈과 폭력이다.
팔레스타인은 실제로 억압받고 갇혀 있지만 오히려 이스라엘이 피해자인 척 한다고 느낀다.
점령자가 어떻게 희생자가 되냐고, 그들이 억압자이자 희생자이고자 한다면
우리는 순교자가 되고 살인자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둘째, 수하와 자이드이다.
둘은 서로에게 이성적인 끌림을 느끼지만 그들이 바라 보는 것과 겪어온 것은 반대이다.
수하는 저항세력의 영웅 "아잠"의 딸로서 팔레스타인 내에서는 혜택을 받고 자란다.
더우기 불어권에서 생활을 했기에 이 갈등에 대해 조금은 객관적으로 볼수 있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녀는 죽은 영웅보다는 살아있는 아빠를 원한다.
자이드는 매국노로 처형당한 아버지를 가지고 있으며, 그로 인해 알게 모르게 핍박을 받았을 것이다.
그는 영웅을 꿈꾼다. 팔레스타인의 불평등한 현실밖에 아는 것이 없다.
타인이 그를 이해하는 것은 힘들다고 보고 있다.

셋째. 자이드와 할레드
이 두 캐릭터에서는 입장의 변화와 노선의 변화가 흥미롭다.
처음에 고민하고 갈등하는 것은 자이드이다.
그는 두 현실을 직접 보면서 판단을 한다.
확고했던 할레드의 노선은 한번의 실패와 자이드의 방황을 보면서
수하의 말이 옳을지도 모르며 더 나은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사고가 전환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확고한 신념도 있지만 어머니가 더 좋은 정수기 필터를 사용하기를 원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는 자이드의 상황변화에 따라 항상 대각적 위치에 존재하고 있는 것같다.

위 세가지 대립각에서 팔레스타인이 고민하는 모든 것이 들어 있다.
무엇이 옳은지는 이 영화에서 말하고 있지 않다.
단지 이러한 현실이 있으며 분명히 팔레스타인은 공정한 시각을 원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그들도 원하는 것은 자유와 정의이며 평등한 입장을 원한다는 것이다.

어쨌던 스토리와 여러가지 대칭을 통하여 팔레스타인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텔아비브에 혼자 남은 자이드의 줌인 되는 시각을 통하여 관객이 그 눈으로 현실을 보기 원하는 것이다.
그가 폭탄을 터뜨릴지 포기할지는 모른다. 그가 원하는 것은 자신을,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다른 사람들이 편향되지 않은 시각으로 봐주기를 원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이것 저것 많은 생각과 사유를 필요로 하는 영화이다.
삶에 관한 존엄성과 그 가치에 대해 고민해봐야 할 영화이다.
생에 우선하는 가치, 가치에 우선하는 생.
어느 것이 옳은지는 모르겠다.
단지 어떤 경우에는 삶에 우선하는 가치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난 여전히 어떤 경우에도(물론 지극히 내 개인적인 시야에서) 삶에 우선하는 가치는 없다고 여긴다.
존재의 이후에 가치가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지금 당신이 있는 곳은 천국인가? 내가 가야할 곳은 천국인가? 그것을 묻고 싶어지는 영화이다.

Sep 2, 2006

Assault on Prestinct 13


그냥 저냥 볼만한 킬링 타임용 영화. 에단호크의 망가진 모습이 이 영화에서는 딱이다. 로렌스 피쉬번은 항상 매트릭스다. 달라지는게 없는 듯.


억지설정이긴 하지만 생각없이 보면 된다.
악과 악의 대결. 그 속에 갇힌 선(?)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입장의 주인공.
선과 악의 일반적 도식에서 영화는 관객에게 일방적으로 그 역전을 요구하기고 한다. 이것 저것 적었다가 그 내용이 다 날아가 버렸다. 그래서 짧게 적으련다.

Aug 27, 2006

Aug 25, 2006

NaNa

일본의 베스트셀러 순정(?)만화 "나나"를 영화화 했다. 야자와 아이라는 만화가의 작품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작가 이름은 잘 모르겟다. 만화도 나름대로 재미있게 읽었기에 전부터 보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잘 손이 안갔다. 아마도 그건 음악을 소재로 한 만화를 영상으로 얼마나 표현해낼까 하는 우려 때문이기도 하다. "Beck"이라는 음악소재의 만화가 있는데 그 애니메이션도 이상하게 손이 잘 가지를 않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 같다. beck이란 만화는 내가 좋아하는 만화 중의 하나다. 실제로 들리지 않는 만화속의 음악이 실체화 되었을 때의 실망감이 클것 같아서라고 말할 수 있겟다. 하여튼 나나는 보게 되었는데 캐릭터는 그런대로 잘 살아있는 것 같다. 만화가 완결된 것도 아니고, 어느 정도의 부분까지만 극화했는데 나름대로 만화의 내용을 잘 따라 간것 같긴 하지만, 만화를 모르는 사람 같은 경우에는 내용이 좀 쌩뚱 맞을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음악은 별로 맘에 안들지만 배우로서 하치와 나나는 꽤 괜찮았던 것 같다.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정도로 말하고 싶다.

생각외로 좋았다는 말은 아닌것을 명백히 해야겠다. (솔직히 좋지는 않았으니)

두명의 나나가 사는 곳은 707호 (일어발음으로 nana maru nana로 하면 될런지는 모르겟지만)에 산다는 설정은 재미있었다.
도쿄에 살아가는 젊음들의 사랑과 방황의 이야기이다. 만화는 뒤에 가면서 접입가경으로 변해가서 손을 놓긴 했지만 여기의 내용까지는 충분히 재미있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만화를 접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