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주단기 Riding Alone for thousands of miles 2005
장이모우
다카쿠라 켄
오랜시간 아들과 연락을 끊고 지내던 다카다는
아들의 와병소식을 듣고 찾아가지만 만나지 못한다.
며느리에게서 받은 비디오테입을 통하여
그는 아들이 원하던 중국경극의 촬여을 위해 중국으로 떠난다.
경극배우인 리자밍은 술먹고 동료를 상하게 하여 복역중이라
그의 경극 공연을 찍지 못하게 된다.
교도소로 찾아가 촬여을 하려고 하지만
리자밍은 자신의 아들 생각에 울어버리고 공연을 하지 못한다.
다카다는 리자밍의 아들을 데리고 오려고 생각하여
석촌이라는 곳을 찾아 아들인 양양을 데리고 오지만
양양은 아버지를 만나기릉 원하지 않는다.
양양과 길을 잃은 하룻 동안 그의 아들 켄이치는
병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만
그에게 유언을 남긴다. 이제야 화해를 하게 된 것이다.
다시 교도소로 리자밍을 찾아 온 다카다는 양양의 사진을
리자밍에게 보여주고. 리자밍은 다카다를 위해 공연을 한다.
장이모우가 다카쿠라 켄이란 자신의 우상이었던 일본배우와의
공연을 위해 만든 영화라고 들었는데, 솔직히 이 배우를 보기는
몇 번 본 것 같기도 하다.
하여튼 중국과 일본의 두명의 아버지와 두명의 아들 이야기이다.
중국의 아버지는 감성적이고 스스로를 마음대로 표현하고 살지만
아들과의 관계는 그렇지 못하다.
일본의 아버지는 무뚝뚝하며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않는다.
아들과의 관계 또한 마찬가지이다.
결국 이들을 연결하고 극을 이끌어가는 것은
아들이라는 매개체, 부정의 표현이며 결국은 소통의 문제일 것이다
두 사람은 결국 아들을 만나지 못한다.
하지만 이들은 결국 사진, 유언, 사람들의 모습을 통하여
서로가 소통하게 되며 이해하게 된다.
물론 그것이 굉장히 자기 중심적이고 직접적인 교류가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마도 이들은 만족했으리라 믿어진다.
영화를 보면서 든 생각은 배우를 통해서도 표현되어지기도
하고 극 자체를 통해서도 느껴지는 굉장할 정도의 절제미였다.
교도소에서 사진을 보고 울던 재소자와 리자밍의 모습에서도
난 엄격한 절제를 느꼈다. 아마도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직접적인 소통이 아닌, 하나를 건너 전해진 간접적인 형태의
교류라는 것과 또한 극의 흐름, 그리고 다카쿠라 켄의 절제된 연기와 캐릭터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 같다.
장이모의 초기 작품들과도 다르지만, 최근의 무협블록버스트들을 통한
넘쳐 흐르던 과잉영상과 부족했던 감성을 벗어난 것 같다는 느낌이다.
천리주단기는 관우가 친구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수천리에 이르는 길을
혼자 달려가는 이야기라고 한다.
경극의 한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이 작품의 제목이기도 하다.
관우가 아닌 다카다가 일본에서 중국으로, 중국 내 이곳 저곳을
찾아다니면서의 감정과 이해의 폭과 과정을 같이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절제미와 억눌림의 선상에서 어떤 식으로 느끼느냐가
이 영화를 판단하거나 호오를 결정할 것 같다.
나는 억눌렸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볼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위에 두 포스터가 있지만 오리지널 포스터 보다 더 나은 한국판 포스터인것 같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