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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27, 2006

Cinema Paradiso

시네마 천국이라는 극장을 배경으로 한 사람의 성장사를 그린 영화.

알프레도와 토토.
아마 꼬마 토토와 알프레도는 거의 최고의 투톱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두사람의 우정, 사랑. 여기에 영화는 단지 매개일 뿐이다.
아버지가 없는 토토에게 있어서 알프레도는 아버지, 친구, 스승의 모든 역할을 다한다고 할 수 있다.
알프레도에게 있어 토토는 아들과 같은, 아니 자신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원하는 자신의 아바타로서의 바램이고 희망일 것이다. 자신들의 약속을 우직하게 지켜나가는 두사람.

시네마 파라디소에서 어린시절, 첫사랑, 영화 등 모든 것을 다 겪은 토토와 시네마 파라디소에서만 살아온 알프레도, 그들에게 있어 영화라는 그 장르 자체보다는, 극장인 시네마 파라디소에서 상영하는 모든 영화들이 자신의 생활이 되어 있는 것이다. 아마도 감독에게 있어서나, 토토나 알프레도에에 있어서,

영화는 예술 작품도, 상품도, 생활도 아닌 그 자신을 투영하는 모습일 것이다.
극장의 흥망성쇠, 영화의 발전과 대중매체로서 가지는 역할의 변화등, 그 모든 것을 토토의 성장과 극장의 변천사를 통하여, 알프레도의 죽음을 통하여, 추억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감성적으로 묘사한 것같다.

알프레도, 토토 뿐 아니라, 시네마 파라디소에서 함께 울고 울었던 그 모든 사람들의 추억이 잘 버무려져 있다. 마지막의 키스신 모음은, 아마도 이 영화를 더욱 감동적으로 만들어가는 주요인 중 하나일 것이다.


대중매체로서의 영화던, 예술로서의 영화던 그 영화를 보고 느끼는 관객들은 정말 다양하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상품이던, 예술이던 내게 있어 이런 추억을 줄 수 있다면, 토토가 느꼈을 감동을 나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은 것이 아닐까? 영화는 다양한 측면을 가진다. 주제를 가진다. 이야기를 가진다. 하지만 이런 따뜻한 추억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무얼 더 바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ps.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말하듯 최고의 영화다. 영화사랑이라는 측면에서 최고이다. 하는 말에는 동의 하지 않는다. 이건 하나의 성장영화이며, 추억되살리기이다. 단지 그 과정에서 영화라는 매개체를 훌륭히 사용했으며, 또한 잘 만든 영화로 표현된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를 위한 영화는 아니라는 느낌이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의 추억을 잘 되살린 작품이다. 두서 없이 이렇게 생각해본다.

Jul 21, 2006

Tickets 2005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라는 이름 하나만 믿고 봤는데, 아니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라는 영화에 대한 이미지만을 가지고 이영화를 보게 되었다고 해야겟다. 하지만 내 친구의 집은 어디에도 없었다. 켄 로치, 올미 라는 감독들은 잘 모른다. 로치의 이름은 많이 듣긴 한 정도. 한 기차안에서의 세개의 에피소드 누가 어떤 편을 감독했는지는 모르겠다. 로마로 가는 기차, 나름대로 저마다의 사정을 가지고 기차를 타게 된다. 꿈꾸는 노신사, 거만하고(arrogant) 무례하기까지 한 이기적 노부인, 축구에 미친 스코틀랜드 아이들. 세개의 에피소드는 무리 없이 각각의 결말을 보여준다. 우리네 인생이 이렇다고 표현한 걸까? 세편의 스타일 중 가장 맘에 든건 첫번째 에피소드 노신사의 일장춘몽? 상상?을 시차적 편집이 아닌 사람이 생각을 하듯 NonLinear하게 전개하면서 노년의 슬픔과 바램을 잘 묘사하고 있는 것 같다. 두번째 에피소드 저런 사람이 있을까? 할 정도로 만약에 앞에 있다면 피해버리지 않으면 한 대 때려주고 싶은 사람. 돌봐주는 지역 봉사원, 다른 승객과의 부딛힘 . 그리고는 파국. 아니 결론은 혼자서도 잘한다는 말이다. 챔피언스리그에 셀틱을 응원하기 위해 스코틀랜드에서 로마까지라는 무지막지한 여행을 하는 아이들. 티켓을 잃어버리고 찾으려고 하고 난민가족과의 얽힘, 착한 결말을 이루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역시 이넘들은 예비 훌리건들이었다. ^^

아주 큰 감동도 느낌도 없었지만, 조금은 시끌 벅적한 일상사란 느낌.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다 세 감독의 각각 작품을 연결하는 난민가족을 보는 시선들을 제공한다는 느낌이랄까? 자신만의 세계에서 문득문득 보이는 난민들의 처지, 결국은 우유한잔의 호의,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빠져나올 생각조차 하지 않는 중에서 보는 시각. 그리고 순수할 수도 있는 청소년들과 난민의 부딛힘. 그래 결국 모든 것들은 일상일 뿐이다. 그것이 크던 작던, 의미의 부여여부를 떠나서 모든 것은 일상이며 자유롭지도 않고 혼자일 수도 없다는 것을 이 여정에서 보여주는 걸까?

이 정도까지만 생각하련다. 더 이상은 무리. 내 취향과 많이 다르다.

장미의 이름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영화화 한 것으로 벌써 20년이 된 작품이다.
아주 예전에 책도 읽었고 영화도 봤었다. 둘 다 제대로 기억은 못하고 있지만 책이 주었던 만족감을 영화는 제대로 주지 않았다고 기억하고 있다.
다시 영화를 보게 되면서 느낀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해결하는 과정에 있어 대충 넘어가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힘들었고, 전혀 어떤 추리도 고민도 없었다. 단지 영상을 따라갈 뿐이었다.

물론 내가 중세의 캐톨릭에 대해서 무지하고 역사에 문외한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영화는 에코의 지적 유희를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단순히 영화만 본다면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 그 당시의 사회에 대해서 단편적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만 해도 훌륭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그것은 영화의 역할이 아니지 않은가? 하나의 책에서 비롯되어진 인간의 욕심, 탐욕, 잘못된 믿음 이러한 여러 요인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결국 모든 것은 인간의 이기심에서 비롯되어진다는, 해결 또한 마찬가지라는 두리뭉실한 결론을 생산한다. . 그것을 무리하게 신과 연결하고 미신화하면서 신은 상징적 경배의 대상에서 물신화 되어 버려 오히려 인간을 지배하고, 그 도구화되어 가고 있다, 그것도 잘못된 방향으로,

여기에서의 믿음은 faith의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믿음, 즉 신뢰(trust)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종교에서의 믿음은 일방적인 것이다. 신뢰는 상호 양방향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중세의 믿음, 지금의 믿음 그 어디에도 절대적인 믿음은 없어보인다. 단지 그것을 편한대로 해석하고 이용하는 인간들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난 종교 그 자체의 중요성을 차치하고 어떻게(how) 믿느냐 하는 부분에 약간 더 관심을 가진다. 왜? 무었을? 이러한 부분은 종교 사이의 차이일 뿐이다. 인간들이 어떻게 이해하느냐 이용하느냐에 따라서 앞으로의 진행방향이 정해진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신은 이미 죽었다는 "니체"의 말에 1005 동의 한다. 하지만 여전히 신은 활동하고 있다는 아이러니가 존재하니 문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신의 죽음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부정하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그 존재 또한 부정되어지고 있다. 그래 신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활동하는 것도 아닌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수단으로써. 내 생각은 그렇다. 기능하는 신은 이미 신이 아니란 것이다. 그건 인간의 한 존재양식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흐미 어쩌다 이런말을 적게 되었는지. 쩝.

종교의 역할이 인간사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누구나 알 것이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아마 미래에도, 믿음에 따른 각자의 행동에 타인이 뭐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바로는, 누구나 자신의 믿음을 자신의 의지를 타인에게 전달하고 같이 느끼게 되기를 원하게 된다. 즉 스스로가 신이 되고 싶어하는 것은 아닐까? 신을 느끼고 선택하고 선택받고 또 타인을 구제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우월하다는 선민사상을 무의식적으로 동반한 채로, 그렇게 종교로 인하여 잘못된 믿음으로 인하여 인간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은 아닐까하고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내가 종교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도, 또 그들의 생각이 틀리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그 선택에서 얼마나 스스로의 행동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며, 그에 따라 진정한 믿음을 실천하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진정한 믿음이란 것은 솔직히 전혀 모르겠다. 구원, 열반, 천국, 해탈, 부활 등등 종교에서의 약속들을 믿는 건 아닐까? 그러기 위해서종교인들에게 신은 존재해야만 하는 것이다. 바로 그 약속의 실현을 약속하는 존재를 신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신은 사라졌고, 인간은 스스로 신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허걱 장미의 이름 감상을 적는데 어쩌다 사태가.

말이 엉뚱한데로 흘렀지만, 이 영화는 한 수도원의 연쇄살인 사건과 부패한 종교, 잘못된 믿음, 당시 민초들의 삶을 조금씩 조금씩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냥 생각의 여지를 주지 않은 채. 그냥 나열만 한다는 느낌,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이 영화는 아소라는 견습수도사의 첫사랑에 대한 기억과 위의 여러가지 사건들에 대한 추억을 보여주는 일종의 성장영화라고 생각한다.

많은 것을 기대하지말고, 그냥 편안히 본다면 재미있을 수도 있고, 오히려 지루할 수도 있을 것이다.

20년전의 션 코너리나 근래 영화를 찍지 않지만 최근의 모습과 별로 다를 것 같지 않다.
아마 가장 멋있게 늙어가는 배우가 아닐까 여겨진다. ^^

감독 : 장 자크 아노
배우 : 숀 코너리, 크리스찬 슬레이터, 론 펄만, 레오폴도 트리에스테, 버논 도트체프?
장르 : 드라마, 스릴러
등급 : 18세 이상
상영시간 : 132분
제작년도 : 1986년
개봉일 : 1986년 01월 01일
국가 :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May 18, 2006

Beyond the Clouds /음란서생

Beyond the Clouds 구름 저편에
빔벤더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특이한 마스크에 독특한 매력의 보이스를 가진 존 말코비치가 주인공인 이 영화는 이해가 잘 안가면서도 참 좋았다.
독특한 정신세계를 가진 영화감독의 이야기이다.(영화감독이 다 그럴런지도 하는 생각을 가진다) 내 친구넘이 생각난다. 물로 난 제대로 이 영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 친구에 대해서도 전부를 이해하지를 못한다. 하지만 좋다. 그냥 좋다고나 할까. 좋아한다는 감정에 논리를 이유를 찾는다는 것은 조금 웃기지 않는가. 마찬가지 느낌이다. 그냥 좋은 영화이다.

단지 특이해보이기 위한 것인지 진정으로 독특한 것인지를 떠나서 그 모습만으로 그냥 바라볼만하다.
그리고 소피마르소는 여전히 이쁘다.

음란서생
감독 김대우

한석규 김민정 이범수 오달수


보면서 조금 피식거리긴 했지만 의외로 나쁘진 않았다고 느낀 영화
한석규는 이제 영화 그만 찍어야 겠단 생각이 들긴 하지만
메인 캐릭 세명중 이범수 와 오달수(야설유통책)의 연기는 꽤 호감이 간다.

이걸 보면서 몇 달전에 본 사드 백작 이야기인 Quills와 비교하는 건 조금 무리일지 모르겠지만 여러면에서 비교되어지는 느낌을 피할 수는 없다. 지레짐작으로는 아마 그 영화에서 영감을 얻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수작이라고 까진 말 못 하겠지만 괜찮은 영화인 것 같다. 현대에서의 용어를 섞어가면서 웃음을 주려고 한 것 같긴한데 그 부분은 약간 어색. 그냥 연상되게끔만 했으면 관객에게 작은 성취감을 주고 더욱 효과적이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