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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18, 2007

퍼퓸 - 살인자 이야기 (Perfume: The Story Of A Murderer, 2006)

참으로 오랜만에 쓰는 게시물이지만,
노트북 하드 고장이라는 암초에 의해
이미 저장해두었던 모든 Data는 날아가버렸다.

그래서 간단하게 적을 수 밖에.

그루누이라는 특이한 인생을 살아간
한 살인자의 이야기이다.

더불어 파트릭 쥐스킨트의 유명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나는 그의 소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폐쇄적이고 편집증적이며
스스로 소외를 시키는 듯한 느낌을 받았으며
좀머씨 이야기, 향수를 읽었으며
비둘기를 읽다가 책을 던져버렸던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본 이유는
향수라는 후각을 주 소재로 하는 내용을
어떻게 영상으로 옮겼을까 하는 의문때문이었다.

소설같은 경우 취향만 맞다면 흥미롭게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취향도 맞지 않는데다.
소설의 내용을 모르고서는 그 디테일과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혀 알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다면 아마도 나는 머리가 나쁜가 보다.

다른 이들의 좋은 평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기대이하 아니
예상 그대로의 영화라고 해야 하나.

덧 붙이자면 난 이런 삶의 방식과
인간들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일런지도 모르겠다.

데이터 소실로 인하여 더 이상은 적을 힘이 없다.

Oct 12, 2006

My life without me/ mi vida sin mi 2003


Isabelle Coxiet

페드로알마바드로의 영화인줄 알고 봤는데 아니었다. 나중에 크레딧 보면서야 알았다.
물론 영화보면서 이건 좀 이상한데 하긴 했지만, 일단 영어대사가 나오길래 더빙인가
생각을 하면서도 더빙 정말 잘했군 하는 생각을 하다니. 멍청하긴. 쩝.

그렇지만 나름대로 재미있게 보았고, 캐릭터에 몰입하면서 생각도 해봤다.
전에 본 일본 영화 니라이카나이로부터 온 편지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물론 그건 딸들에게 전하는 18살까지의 생일메시지 테잎과 편지에서 직접적으로
떠올랐고 비교하면서 생각해보니. 니라이카나이에서 생각지 못했던 엄마의 입장에서
자신의 죽음과 남겨진 딸들에 대한 애정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어서
더 좋았던 것 같다.

23세의 앤은 두딸, 남편과 함께 엄마의 집 뒷뜰에서 트레일러 생활을 하고 있으며
그녀는 여러개의 파트타임잡을 가지고 있다. 애들과 생활에 지쳐 단지 중국어 회화
테잎을 듣는 것만이 유일한 자신의 의지이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쓰러지고 난소암 판정으로 2개월의 시한부인생을 선고 받는다.
그때부터 그녀는 생각을 시작한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겪어왔고 힘들었던 모든 시간에서
자신은 생각이 없었는데 이제 생각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하면서 죽기전에 해야 할 일 열가지를 정한다.
그 목록은 다음과 같다.

죽기 전에 해야 할 일들

1. 딸들에게 사랑한다고 매일 여러 번씩 말해주기

2. 남편에게 조신한 신부감 구해주기

3. 애들이 열 여덟이 될 때까지의 매년 분의 생일축하 메시지 녹음하기

4. 가족 모두 웨일베이 해변으로 놀러가기

5. 담배와 술을 맘껏 즐겨보기

6. 내 생각을 말하기

7. 다른 남자와 사랑을 한 후 기분이 어떤가 알아보기

8. 날 몸바쳐 사랑하는 누군가를 만들기

9. 감옥에 계신 아빠 면회가기

10. 인조 손톱 끼워보기(머리 모양 바꾸기)

그녀는 이제 남은 시간 위의 것들을 하나하나 실천하기 시작한다.
누군가 다른 사람을 사랑해보고, 가족에 대해 나름대로 배려를 하고,
이제 인생에서 내가 없는 내 삶을 준비하면서 그녀는 자신의 삶을
찾는다. 지금까지의 삶은 그녀가 없었지만 지금현재의 삶과
자신이 없을 미래에 그녀는 분명히 어떤 식으로던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만약 이런 상황이라면 어떨까?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원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현실에서 쉽지는 않지만 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다만 부족한 것은 시간이었다는 그녀의 말에 동의하기 전에 말이다.

뭐 여러가지 딴지 걸고 싶은 부분도 있지만 죽음이라는 화두와
삶에서의 정체성 문제 앞에 그러한 것들은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살아간다는 것, 죽어간다는 것. 긔 의미의 차이는 뭘까?

Oct 6, 2006

La Sombra Del Viento/Shadow of the wind/바람의 그림자 2001


Carlos Ruiz Zafon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사폰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친구가 빌려 준 책이기에 약간의 의무감과 흥미, 그리고 친구에게 들었던짧은 이야기만 기억한 채 읽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친구가 말했던 스페인 내전에 관계된 이야기라는 말은 내가 잘못 기억했던 말로 생각되어진다. 단지 그 내전을 소설 시대의 한 배경으로 하고 있음은 사실이고, 친구의 성향상 아마도 정치적 사회적 배경에 대해서 주목을 하고 말했음인 것이라 추측한다.
근 400페이지에 이르는 책 두권으로 이루어진 꽤 두꺼운 책을 약 3일에 걸쳐 쉬엄쉬엄 읽게 되었고, 그 느낌을 몇가지로 적어본다.
첫째 이 소설은 환상과 현실, 허구와 실재, 상상과 추론의 대비되는 주제와 소재를 적절하게 사용하여 독자의 흥미를 이끌어내고, 책, 문학, 독서라는 하나지만 여러가지 형태를 가지기도 하는 매체에 대한 헌사임이 분명하다.
둘째 바람의 그림자라는 중의적 의미를 가진 제목은 이 소설자체와 소설내 소설의 주인공을 현실속에 등장시키면서 그 저자인 훌리안 카락스와 주인공인 라인쿠베르에 대한 호기심과 의문을 배가시키고 있다. 즉 추리소설로서의 일면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바람의 그림자라는 한권의 책, 저자인 훌리안 카락스와 그의 친구들 그리고 다니엘과 페르몬, 베아 , 클라라 등의 관계없어 보이는 모든 사람들이 이 책으로 연결되어 있고책에 대한 호기심은 모든 갈등과 문제를 해결한다. 그리고 권선징악적인 결말은 소설내 불행했던 모든 캐릭터들에 대한 보상일런지도 모르겠다.
셋째 이 소설에서 보이는 여러가지 아버지상들은 하나의 절대선과 비뚤어진 악들로 이루어져서 다니엘의 우유부단하고 허약한 정신에도 불구하고 다른 등장인물들과는 절대적인 차별성을 부여하고 있다. 아버지라는 위치에 대한 인식과 존경의 염 또한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넷째 잊혀진 책들의 묘지로 대표되어질 수 있는 미스터리한 환상적 장치들은 이 소설이현실에 대한 조금은 덜한 관심을 희석시키면서 소설내 추악할 수도 있는 행태들에 대한 어떤 면죄부를 발부하고 있는 느낌도 들었다.
다섯째 내가 쉽게 간과하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스페인 내전과 관련된 시대적배경을 선택함으로써 당시에 문학이, 책이 차지했었던 위치와 순수한 소년과 공권력, 악과 선의 공존이 이루어지고 역전이 이루어지는 시대적 배경에 대한 비판 또한 은밀히 존재하고 있는 것 같다.
여섯째 바르셀로나에 대한 지극한 애정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베아 누리아,페넬로페, 클라라와의 사랑을 통하여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일곱번째 다니엘과 그의 아들인 훌리안은 마지막에 다니엘이 그의 아버지와 했었던대화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달라진 것이라면 여기엔 어머니의 존재유무일 것이다.다니엘이 어머니의 얼굴을 기억함으로써 그는 더 이상 울지 않게 될것이고훌리안은 어머니와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질 것이며잊혀진 책들의 묘지에서 책을 입양하고 같이 성장해나가는 그들의 환상적모험은 아마도 계속될것인지 모르겠다. 성장소설로서의 일면 또한 강하다는 말이다.
다니엘은 아버지와의 성지순례와 같은 책 입양의식을 통하여 한권의 책을 얻게 된다.그로 인해 일어나는 사건과 이야기들, 또 그의 성장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고 간단하게 줄거리는정리된다. 어쨌던 소설의 재미는 아주 높은 편이다. 단지 너무 짜여진 구성이라 약간의 작위성을 느끼긴 했지만 어차피 소설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그러하니 이 느낌은 나의 까탈스러움일꺼다.
소설을 한번 휘익 훑어보고 적는거라 단편적인 느낌만 적었으며 나의 소견에 의한 오독과 오해 또한 있을거라 생각된다.어차피 한번에 이해할 수 있는 건 줄거리와 이미지 밖에 없는 지라.다음기회를 기약할 수 밖에 없다. 책을 빌린 것이라 돌려주어야 하지만, 영문으로 된 txt를 구하였고, audiobook 또한 구했으니 시간 날 때마다 조금 씩 읽고 들어볼 생각이다. 다만 원어인 스페인어로는 읽지 못하는 것이 많이 아쉬울 뿐. 다시 읽고 약간은 정리 된 감상을 다시 올려야겠다. 2006-10-06 13:47:36

Sep 19, 2006

Hipnos 최면

Spain
최면
다 보고 나면 허무해지는 영화.
나오는 말. 떠거랄 뭐냐고?
처음의 흥미진진했던 스토리와 구성은 끝에 가서
피시식 다 꺼져 버린다.
결국은 과거의 트라우마로 인한 환상이었을 뿐이란거.
그녀가 실제로 보고 겪은 것은 처음의 잠깐과. 기억을 되찾는 부분 뿐이었다는 말.
뭐 결국 천벌을 받아 다 죽고 만다는 이야기?
죽는 것은 쉽다.
뭔가 메시지를 느끼긴 했는데 그건 이영화로 인해서 느꺼져지는 것들은 아닌 듯.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믿고 있는 것들, 기억하고 있는 것들. 보고 있는 것들이
진실이 아니라면, 그리고 진실을 알게 되면 파국이 보인다. 그럴 경우?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은 진실인가? 진실은 믿을만한가?
만약에 모든 것이 조작되고 내가 알고 있는 것과 틀리다면?
뭐 그런 의문을 제시하는 영화인 것 같은데.
설득력은 좀 약하다.
또 보는 도중 베아트리스가 그 소녀라는 느낌을 여러번 받았기에 반전으로도 약하다.
뭐 그래도 흥미로운 접근인 것 같기는 하다.
ps. 여자 배우는 이쁘더라. ^^

Sep 3, 2006

씨 인사이드 (The Sea Inside, Mar Adentro, 2004)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Alejandro Amenabar)

1. 씨 인사이드(Mar Adentro:The Sea Inside) 2004
2. 디 아더스(The Others) 감독 2001
3. 오픈 유어 아이즈(Abre Los Ojos:Open Your Eyes) 1997
4. 떼시스(Tesis) 감독 1996

위의 filmogrphy를 가진 감독이다.
작품이 적어서 그런지, 인지도가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거의 다 봤다.
그렇지만 솔직히 크게 기대하진 않았다.

영화를 보기전 기본적인 정보는 안락사에 관한 이야기라는 정도였다.

라몬은 26년째 사지가 마비된 상태로 살아오고 있으며 스스로의 죽음을 공식적으로 요구한 첫번째 스페인 사람이다. 그를 돕기 위한 협회에서 훌리아란 퇴행성 질병을 앓고 있는 여성변호사를 소개하며 만남으로써 이야기는 전개된다. 훌리아를 만남으로써 그녀에게 끌림을 느끼고 자신을 진정으로 도와줄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그에겐 로사라는 약간 덜 떨어져 보이는 여성이 접근한다. 그녀가 그에게 바라는 것은 관심이고 친절이다. 그녀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여긴다. 물론 그에게는 가족도 있다. 자식의 죽음보다는 자식이 죽음을 원한다는 것이 더 슬픈 아버지,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동생과 가족을 위해 과수원 일을 하는 형, 마치 어머니 같은 사랑을 베풀어 주는 형수 그리고 라몬이 자신의 자식처럼 느끼는 조카 "하비에르". 이 가족들의 헌신과 그에 대한 사랑은 아마도 그가 26년간이나 고민하면서도 살아가게끔 하는 원동력이었을런지도 모른다.

훌리아와의 만남을 통하여 그의 단편적인 과거는 드러나고, 그의 사고순간도 알게 되면서 작은 의문이 생겼다. 왜 물이 빠지는 바다에 그는 뛰어 들었을까 하는 거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뱃사람이었던 그가 몰랐을리는 없었을 텐데. 아마 그 때 그는 죽고 싶어하지 않았을까? 그는 여기서 죽음에 가까울때 주마등처럼 떠오르는 과거의 순간들을 이야기한다. 그 장면들은 훌리아가 보는 그의 옛사진들과 함께 흘러가며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 된다. 그가 적었던 글은 그와 훌리아를 연결시키는 관계의 완성을 위한 과정이었다. 책의 완성은 두사람의 동병상련에 따른 깊은 이해에서 서로의 죽음을 향해 떠나는 약속이었지만, 훌리아의 질병은 그것을 불가능하게 한다. 종교계, 법조계, 정부 등은 그의 죽음에 대한 열망을 용인할 수가 없다. 그것을 용인한다는 것은 인간 사회의 질서와 도덕적 기준에 맞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더 복잡한 이유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 상관이 없다. 라몬에게 있어서 죽음은 선택할 수는 있지만 실행 할 수가 없는 불가능의 영역이다. 그래서 그는 죽음을 더욱 원하는 것일런지도.

라몬이 훌리아에게 처음 말을 할때 기억나는 대사는 그의 죽음을 원하는 이유를 그렇게 설명한다. 당신과 나는 2m정도 떨어져 있다. 당신에게 있어서 그 거리는 여정이라고도 할 수 없는 의미없는 것일지 몰라도 나에게 있어서 그 거리는 불가능한 거리의 여정이라고, 26년간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창밖을 보며 상상하고, 글을 적는 일이 전부였다. 그래 상상하고 꿈꾸는 외에는 그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창밖을 보는 것 조차 그는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마지막을 스스로 결정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어떤 신부는 그를 관심을 끌기위한 행동일 뿐이라 매도하고, 그의 결심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다. 그를 사랑한다는 "로사"의 도움으로 그는 바다가 보이는 전망의 집으로 옮기고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을 준비를 한 후 28년 4개월의 존엄하지 못한 삶을 포기하고 스스로 명예로운 죽음을 실행한다. 몇장의 편지만 남긴채.

그의 편지는 훌리아에게 전해지지만 훌리아는 "라몬"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녀 역시 바다를 보며 살아지고 있을 뿐이다.

간단한 줄거리를 적으려 했지만 여전히 잘 되지는 않는다.
라몬이 사고를 당할 때, 그가 구해지는 장면은 반복이 된다.
그것은 그가 기억하는 마지막으로 스스로의 의지로 뛰어내린 바다이자
지긋지긋한 불명예스러운 삶의 시작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상상의 날개를 통하여 항상 바다로 향한다.

그는 삶의 가치를 부정하지도 않고 존재의 가치를 부정하지도 않는다.
그것을 일반화 시키지도 않는다. 다만 그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기를 원하며 작은 호의를 원할 뿐이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일수 있었다면 전혀 필요없었을 아주 작은 도움을 원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법제도와 종교적, 도덕적 관념들은 그를 다만 침대에 묶어두고 있다.
그는 죽음을 원한 것이 아니고 자유를 원한 것이다라고 느낀다.
단지 느낄 수 있는 것이 그의 자유가 아니라 죽음이라 우리가 알수 없을 뿐이다.
슬프고 안타깝지만 기쁘기도 한 묘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 안락사란 부분에 대해서 어떤 말을 하고 싶기도 하지만 어떤식으로 접근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여러가지 상황이 존재하리라 생각한다. 라몬처럼 스스로의 의식이 살아있고 표현할 수 있는 경우와 아무런 표시도 할 수 없는 식물인간의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에 대해서는 조금 더 생각을 해봐야 할 듯 하다. 다만 라몬의 경우에는 그 자신의 입장에서는 당연하지만 가족의 입장에서 생각하자면 어떨까? 어렵다.

살아간다는 것, 있다는 것.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른 말인 듯 하다. 아마 두가지를 합쳐서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후자를 존재한다고 할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존재라는 말의 무게가 너무 무겁기에.
그래서 나는 살아간다는 것으로 한정지어서 이 영화를 생각해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분명히 살아 있지만 이것은 그의 삶의 방식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가 원하는 삶의 방식을 그는 선택한 것 이다. 더불어 안락사란 법적, 도덕적 규범에 대한 의문과 조소를 품으면서 말이다.

영 정리가 안되는 느낌이라 그만 적어야겠다. 필이 안 온다. 쩝.

Jul 21, 2006

달과 꼭지 (The Tit And The Moon, La Teta Y La Luna, 1994)

꼬맹이의 젖꼭지 쟁취기.
그래 그렇게 커가는 거다.
그냥 재미있게 볼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