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 21, 2006

같은 달을 보고 있다 (同じ月をみてる: Under The Same Moon, 2005)

타인의 마음이나 숨겨진 것을 보는 능력을 가진 "돈", 심장에 문제가 있는 순수한 "에미", 에미의 심장치료를 위해 의사가 된 "테츠야".
이 세명의 캐릭터를 통하여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러브스토리인가? 우정에 관한 이야기인가? 뭐 어떻게 봐도 맞는 이야기일 것 같다.
어릴때 부터 시작된 삼각관계에서 비롯되어진 전개. 이건 우리나라 드라마의 전형 아닌가? 또한 남캐릭터들의 경우 의사에 죄수라는 대비,
아름답게 자란 여주인공(여주인공의 역할 또한 똑 같다. 중간에서 방황하고 자기 마음 모르고 그러면서 어딘가에 끌리고)-내가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가장 싫어하는 여성캐릭터의 전형이다. 아무 발전도 개성도 없이 그냥 남주인공들의 갈등의 촉매 또는 수단으로서만 기능하는.
하여튼 내용은 별 특이한 것도 없고 그 전개 또한 거의 예측이 가능하다. 그럼 이게 다인가? 아마 그건 아닐것이다.
감독이 바보도 아니고, 내가 잠깐 보고 추측한 내용을 만든 사람이 모를까?

이런 평이한(결코 내용 자체는 평이한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한국드라마는 이런 상황을 일반적으로 만들어버렸다) 느낌을 주는 스토리에서 내가 본 것은 일단 "쿠보츠카 요스케"라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본 배우중 하나인 이 사람의 역할이며 연기였다. 스토리 또한 테츠야를 중심으로 읽고서야 감독이 말한 건 이런 건 아닐까? 하고 생각을 해 볼 수 있었다.

제목인 "같은 달을 보고 있다" 영제인 under the same moon 그래 이들이 항상 바라보는 것은 달이다.
달의 의미는 무얼까? 같은 것을 보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느낌 또는 받아들이는 것들은 다르다? 그런 걸까?
같은 달을 보고 있고 같은 달을 꿈 꾸고 있지만 또 그것이 실상 같은 것이지만 스스로의 함정에 빠져 달을 쳐다 보려고 하지 않는다는 걸까?
뭐 위 두말은 실상 거의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영화의 전개에 있어 그 이해를 방해하는 두개의 그림 때문에 무슨 의미인지가 모호해지기도 한다.
그 하나는 "돈"이 어떤 산사에서 광기에 차서 그린 불타는 달이며, 또 하나는 "에미"에게 선물하고자 가져오는 신랑신부가 나오는 그림에서의 "해"이다.
왜 이 두개의 그림이 나의 이해를 방해했느냐 하면, 시간적 순서에 있어서 "해'는 분명히 "붉은 달"에 비해 먼저 등장을 하게 된다. 단지 우리가 그것을 보지 못했기에 이것이 결말로서 해결책으로서의 해피엔딩을 보여주는 듯 하다. 하지만 이 그림은 결말로 위장 될 수는 있겠지만, 분명히 "돈"의 탈옥이유였고, "카에코?"와의 교차점의 하나였으며, 계속 궁금증을 유발하는 수단으로서 기능하는데 뜬금 없이 마지막 행복한 미래를 상징하는 기호가 되어 버린다.
아 물론 이 그림만 있다면 "돈"의 능력으로서 그건 가능하지 않느냐? 물론 맞다. 나도 당연히 인정한다.

하지만 이러한 느낌은 붉은 달의 그림과 마지막 화재장면에서의 언밸런스한 전개에 의문을 가중 시킬 뿐이다. 이미 모든 것을 알 고 있는데 왜 붉은달을 그려야 했으며(이 그림에 대한 평은 산사의 할머니가 친절하게 해준다), 아이를 구한 후의 테츠야와 돈의 화해 그리고 죽음, 심장 적출수술로 이어지는데. 그것도 꽤 길게 이어지는 붉은달 그리기는 아무 의미 없는 그냥 극의 고조를 위한 장치란 말인가? 하는 의문까지 들게 하였다. . 돈의 착하기만한 모습에서 보여준 유일한 반항이며 광기의 표출인 붉은 달의 그림의 이유는 단순히 화재의 예언일 뿐인가? 이러한 생각 들 때문에 여전히 난 내생각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다. 화재이후의 모든 것은 설명이 없어도 누구나 이후의 상황을 당연히 짐작케 한다. 너무 뻔했어.

이야기가 옆으로 많이 비껴간 듯 한데 내가 주목했던 부분으로 다시 돌아가자.
"테츠야"의 고민, 갈등,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질투, 그리고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자신에 대한 확신.
어릴때 부터 같이 봐왔던 달을 커오면서 혼자 다르게 보고 있는, 아니 달을 보려고 하지 않는 테츠야가 "돈"의 달을 같이 보게 되는 과정이 이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돈"도 "에미" 도 "카네코"도 모두 테츠야가 같은 달을 보고 있다라는 것을 인식케 하는 과정일뿐인것이라는 느낌이다.
결국은 풍뎅이 그림으로 시작하고 풍뎅이 그림으로 끝내버린다. 같은 달 아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러면 달은 무엇일까? 라는 의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왜 회피하고, 오해하게 되었을까? 왜 받아들이는 것이 틀릴까? 왜 보려고 하지 않을까?
달은 내가 바라는 것이며, 봐야 하는 것이며, 우리가 같이 보아야만 하는 어떤 가치가 아닐까?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 사랑하는 것, 내 자신의 추악한 부분, 이런 포괄적인 의미를 가지는 게 아닐까?
그래 우린 같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인생. 우리의 삶을 살아가는 건 이런거다. 하고 보여줌을 느끼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나는 일종의 우화, 동화라는 느낌을 일본영화에서 가끔 느낀다. 조금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망가라는 느낌을 받는다.

내가 조금 오버하고 너무 깊이 들어가서 나만의 사색을 한 것인지도 모르겟지만.(인정한다) 영화를 보고나니 혼자 사색의 함정에 다이브해버렷다.

느낀 건 느낀 거고, 이 영화의 경우 뛰어난 점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전개와 구성에 있어서도 무난한 편이긴 하지만, 위에 언급했듯 상징의 모호한 사용과 너무 일반화되어 버린 사랑, 우정 스토리에 따른 전개라 이 영화에서 내가 느낀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어지기는 어렵게 보인다.
다만 쿠보즈카 요스케의 연기는 여전히 나를 만족시킨다. 솔직히 처음에는 얘가 왜 이래. 너무 주눅들고 뻣뻣한 거 아니야. 그런 느낌도 들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 캐릭터의 성격과 변해가는 과정을 더 없이 잘 소화했다고 여겨진다. 처음에 내가 이상하게 생각햇던 그 연기는 그 당시의 테츠야를 제대로 묘사했고, 그 불안감을 정말 잘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갈등의 해소, 그래 마음의 평정을 찾은 이후의 연기와 그 전의 연기를 한번 비교해보면 알 것이다. 모든 걸 다 떠나서 삶이라는 화두에 대한 아주 일반적인(또한 아주 의외라고 느낄 수도 있는) 접근이라서 더욱 신선한 느낌을 가지기도 한다.
그냥 볼만하다. 이런 영화에까지 이런 글을 쓰다니라고 말한다면 뭐 난 원래 그래 라고 대답하겠다. 아무리 좋은 영화라도 내가 어떤 사유의 근거를 줄수없기도 하고, 또 나쁜(?wrong의 의미가 아니다. 굳이 말한다면 bad-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영화라고 해도 그 감동과 내 사고를 확장시킬 수 있는 것이다.

볼 기회가 있다면, 조금 더 사고를 확장시키고 본다면 재미있을 영화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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