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좀머씨 이야기
Patrick Suskind 파트릭 쥐스킨트
좀머씨 이야기를 4년만에야 읽게 되었다.
읽는데 걸린 시간이 4년이란게 아니라, 읽게 되기까지가 4년이 넘게 걸렸다는 말이다.
2002년 초에 누군가에게서 선물을 받고 읽어야지 하면서 좀처럼 못 읽었었다.
그 이후에는 좀 기피하는 책이 된 사소한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가지고 있는 책을 안 읽을 수도 없는 것.
내가 궁금한 건 왜 이 책을 나에게 선물했을까이다.
나에게 책을 주면서 꼭 읽어봤으면 좋을것 같다라고 말했었다.
좀머씨는 하루 종일 걷는다. 거의 잠도 자지 않고, 사람들과 교류도 하지 않으며 계속 걷기만 한다.
주인공은 좀머씨가 아니다, 같은 마을에 사는 어린꼬마가 청소년이 되어가는 그 와중의 추억의 한 부분이자 자신만이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한 침묵의 이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나를 제발 좀 내버려두시오"라는 말을 나라는 화자는 그 아픔과 슬픔에 동화된 적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완벽히 이해하고 있다고 느낀 것이다. 그래서 좀머씨의 죽음에 관한 진실은 나만이 알고 있다. 일단은 이렇게 이해를 했다.
글의 역자가 적은 말을 보면 이 소설은 너무도 아름다운 추억에 관한 이야기라고도 표현했고, 좀머씨의 아픔을 2차대전의 피해자로써, 아니면 깊은 아픔이 있는 사람으로 생각이 가능하다라고도 했다.
아름다운 추억이라, 좀머씨에 관한 이야기는 결코 아름다운 추억이 아닌 것 같다. 스스로의 목숨을 포기한 순간 좀머씨의 이유모를 아픔을 이해하고 그 죽음을 방조한 것이 아름다운 건가? 솔직히 자신의 죄에 대한 고백이 아닌가? 좀머씨와 관련 없는 주인공의 일상은 누구나 겪을 수 있고 겪어왔던 미소를 머금게 하는 추억임은 너무도 분명하다, 미스퐁켈의 피아노 레슨, 텔러비젼에 얽힌 이야기들, 아버지의 경마에 관한 이야기, 어린 시절의 어렴푸한 이성에의 끌림과 그 기다림의 설레임은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슬프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아름다우며 되새기고 싶은 추억들이다. 그런데 좀머씨를 떠올리는 주인공은 그 기억들이 아름다울까? 그렇지는 않으리라. 이해를 하고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했지 않느냐? 그래서 아름답지 않느냐? 라고 생각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주인공은 그의 마지막 순간에 나타난 좀머씨의 불안하고 쫓기는 듯한 모습을 30미터 위 나뭇가지서 내려다 봄으로써 저건 고통이자 슬픔이며 한 없는 공포임을 알게 된 것일 뿐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주인공은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전의 아름다왔던 추억들과 더불어 그의 삶을 결정적으로 이끌어나가는 것은 걸어다니는 좀머씨가 아니라 좀머씨가 걸어다니게 되는 이유와 그 죽음이다. 고통을 이해하게 됨으로써 나라는 주인공은 앞으로 한발짝 나아가게 된 것이다.
아름답기만 한 어린 시절 추억의 이야기는 아니다. 아름답고도 슬픈 "나"만의 성장통을 추억처럼 풀어내는 고백이라고 느끼고 싶은 건 나의 억지일런지도 모르겠다. 좀머씨의 아픔을 상상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나는 더 슬퍼진다.
소설외적으로 궁금한 것에 다시 돌아가 보자. 왜 이 책을 나에게 선물했을까?
나에게 뭘 말하고 싶었을까? 물어볼수 없다는 것이 아쉽기도 다행이기도 하다.
내가 좀머씨의 고통의 실체를 몰랐듯이, 내가 몰랐을 그 슬픔을 나는 보듬어주지 못한 것 같아 더 슬프다.
잘은 모르지만 뭔가 번역이 좀 미흡한 느낌을 받았다. 쳇 원서로 읽었어야 하는데. 독일어라 원서로 읽긴 힘들것 같아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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