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도 최악의 소년 (偶然にも最惡な少年) 2003
조센진이 아닌 거의 바보인 간고꾸진(한국인)인 이치하라 하야토,
뭔가 머리에 문제가 있는 냉소주의 유미(나카시마 미카)
여기에 휩쓸리는 양아치 타노.
제목이 매력적이라서 보게 되었는데 보는 내내 엉뚱한 미소를 떠올리게 한 영화이다.
영화의 시작은 타노가 칼레 찔린채 난 죽은게 아니라고 하면서 시작
똑 같은 장면으로 끝나 버린다.
일본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본 영화는 Go를 비롯하여 몇작품을 본 것 같다.
Go에서는 정체성의 문제와 시선의 문제 속에서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느꼈다.
결국은 삶은 다르지 않다. 네가 뭐라고 부르던 그 본질이 주는 느낌은 같다는 것이다.
호칭이나 형식에의 관습으로 오도되어질 수는 있지만 가치의 변환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이다.
반면 이 영화는 어찌보면 무의미한 행동의 반복에 알수 없는 주인공의 기분에 따라서 나아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가 바보최저 한국인이라는 것이 아니고, 유미나 타노가 그의 하카다행에 동행하면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사건에 별 의미도 없다. 단지 한국인이라서 이지메를 당한 정도.
부모의 이혼으로 누나와 헤어진 주인공은 우연히 길에서의 재회 후 부적절한 관계로 발전하는데 거기에 어떤 고민도 갈등도 없다. 그러다 누나의 자살이후 그 시체를 탈취해서 그만의 여행을 떠난다는 것이 영화의 전부이다.
여기에 유미와 타노의 인연이 더해지고 한국행 밀항선을 타기까지의 과정이다.
결국 카네시로가 죽었는지? 누나는 한국으로 가게 되었는지? 타노는 왜 하라다에게 죽었는지?
하는 의문은 많은 추측을 가능케 한다. 그러나 추리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그러려니 하련다.
왜냐구? 영화자체가 추리하기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관객이 무슨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 같아서이다. 카네시로가 누나와 함께 한국으로 갔떤, 타노의 배신으로 인하여 죽었던 그건 의미가 없다.
왜냐구. 카네시로는 우연히도 최악인 소년이 되어버린 것이니까. 그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고, 복수를 해주는 사람이 있다. 죽으면서도 죽은게 아니란 사람도 있다. 그의 삶은 최악은 아니었다. 적어도 그 자신에게 있어서는 말이다.
그럼에도 그는 최악이라는 모순적인 멍에를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치하라와 미카의 대조적인 연기는 과장과 절제, 수다와 침묵등의 대비를 통하여 상대방의 캐릭터를 더욱 재미있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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