魯氷花 Dull, ice flower
루빙화"사람들은 이 꽃을 '루빙화'라 불러요 아주 잠시 피었다가 지는 꽃인데 꽃이 시들면 그 걸 거름으로 쓴대요 차를 기르는 농부들이 차밭에 루빙화를 심고 금방 시들고 나면 그 꽃을 그대로 땅에 묻으면 차를 잘 자라게 하는 거름이 된다고 해요 죽어서도 좋은 향기를 전해주는 것이죠"
영화의 처음에 나오는 말이다.죽은 시인의 사회와 같은 시기에 나왔으며그 이상의 감동을 준다는 평이 있길래 봤는데뭐 그렇지는 않았다.죽은 시인의 사회는 미스터 키팅(?)이 교육제도에 대한 대안적 방식과 학생과 선생님의 소통의 방식에 관한 영화라고기억하고 있는 정도이며 그것도 상세하지는 않다.
어느 산골마을에 도시에서 온 미술선생이 고아명이라는 학생의 천재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도와주려고 하지만 기존의 제도와 인식의 벽에 부딪혀서 실패를 하며 아명의 그림 한장을 가지고 떠나게 된다.아명은 엄마와 같은 선천적 병으로 인하여 죽음을 맞게 되는데,그 이후 미술선생이 가지고 간 아명의 그림 한장이 세계대회 대상을 타게 되며,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지만 정작 가까운 사람과 그 천재성을 알고 있던 사람에게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인정치 않던 타자들만이찬양을 한다는 내용이다.
대충의 줄거리만 보더라도 인정받지 못하는 천재와 그 조력자. 그리고 이들과반대되는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학교, 사회 여러가지 상황들이 있을 것임을어렵지 않게 생각할 수있을 것이다. 또 이러한 천재들의 이야기(굿윌헌팅 등등)에서는 도식화된 구성이라고도 할 수있을 것이다.
루빙화라는 말의 뜻 그대로의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그런데 솔직히 난 이 영화에서 내가 들었던 짧은 평들 처럼 큰 감동을 받지는 못했다.
아명은 갑자기 죽어버리기엔 초반에 너무나 건강한 장난꾸러기 캐릭이어서 그 병이드러나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과 그 천재성의 발현에 대한 표현이 좀 미약하지 않는가 생각이 많이 든다. 아명을 이해하는 누나와 미술선생의 캐릭터는 너무 정형화 되어 있고설득력이 약한 것도 사실이다. 미술선생은 단지 그의 그림 한장을 얻어가고 크레용을 주었을 뿐, 주인공과의 교감 또한 약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주의깊게 살핀 부분은 아명보다는 미술선생이었다. 실력있는 미술선생이 시골학교로 오면서 학생의 천재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살려주려고 한다.하지만 기존 선생들의 몰이해에 따른 탄압(?)으로 그것이 불가능하자 그가 선택한 것은단지 떠나는 것 뿐이었다. 그렇게 돌아온 것은 세계대회 수상이라는 상장 하나 뿐이었다.마지막 대상수상을 축하하는 연설에서의 모습으로 알 수 있다. 그들이 바란 것은 개인의 천재성도, 예술도 아닌 단지 자그마한 사각형의 명예였을 뿐인 것이다.
획일화되고 창조성이 결여된 교육제도와 사회는 아주 느리게 진화할 수 밖에 없으며급격한 변화를 원하지도 않는다. 단지 그 과정을 무시한 성과만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이장의 연설에서 보면 그는 많은 것을 투자하겠다고 약속한다. 결국 그것은 많은 상장을 원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런 면에서 나는 이 영화가 감동적인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제도속의 소외자에 대한 우리의 자화상과 사회에서 인정 받는다는 것에 대한 비판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보편적으로 타당하다는 것이 옳은 것인가 하는 의문말이다.
아름다웠을 그 강과 차밭의 자연은 그렇게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지 않으며 영화를 이끌어 갔어야 할 미술선생과 누나는 힘이 조금 딸리고 있다.오직 고아명만이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괜찮은 소화를 해냈다고 느낀다. 아. 누나의 경우에도 연기는 괜찮았다고 여긴다. 캐릭터의 힘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영화를 보고는 가장 처음에 루빙화에 대해 묘사한 처음의 글만 적으려고 했었다.저 말을 적고나니. 루빙화는 이 영화를 다 표현한 말이 아니란 생각에 글을 계속 적어나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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