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 11, 2006

야한 영화라고 해서 봤다. 아니었다.

세일즈 우먼 le secret

마리의 이중생활

꽤 유명한 영화라고 한다.

몰랐다.

야한 영화라고 들었다.

그래서 자막도 없이 보다 쏟아져 나오는

에스파뇰의 홍수에 깜짝 놀래서 정보를 찾아 보았다.

단순야동은 아니었다. 볼까 말까 망설였다.

프랑스 영화인데 왜 영자막도 없으면서

에스파뇰 더빙이란 말인가? 젠장

억울 했다. 그래서 대충의 플롯만 숙지하고 영상만 봤다.

대사는 대충 감으로 때려잡았다. ㅜㅜ


내용에 있어서도 내 편견에 의하여 굉장히 싫어하는 주제이다.

주제를 싫어한다기 보다는 상황을 싫어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i am a sex addict 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일부일처제란 약속하에 있다면 또 다른 사랑을 찾았으면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마리는 둘 다 포기하지를 않으려고 한다.

자신의 선택을 보여주고는

상대방에게도 선택을 강요한다.

그래 페어하다라고 느낄 수도 있다.

자신은 두개를 선택하고 난 이런데 넌 어떻게 할래하면서

자신의 선택을 들어주기를 바란다.

물론 들어주지 않아도 관계 없다.

그녀가 보여주는 행동은 하나가 더 좋은데 하나는 버리기 싫다는 의미라고 느껴졌다.

나에게는 하나를 포기하라는 의미의 선택을 강요한다.


그래 여자는 행복한가? 건실한 남편에 귀여운 자식 행복한 가정

그러나 그녀는 불행하다. 그런데 행복을 찾은 것 같다.

외간 남자와 격정적인 정사와 감정의 교류가 행복인가?

그러면서 남편과도 관계를 유지하고 말이다.


물론 그러한 과정에서의 혼란 때문에 선택의 강요라는 형태로 들어나는 것임은 알겠다.


새로운 사랑 찾아라 관계 없다.

사랑을 찾았으면 그쪽으로 가라.

차라리 일부일처제의 불합리함과 편협성에 딴지를 걸어라.

그것을 페미니즘이니 자아 찾기니 포장하지 않았으면 한다.

찾았으면 그냥 제발 떠나라. 제발 하나는 포기하란 말이다.

책임지기 싫으면 떠나라, 그 대신 권리도 포기하라는 말이다.

조금 흥분했나 보다.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편견이 굉장히 작용했음을 솔직히 인정한다.

이런 상황의 전개인 줄 진작 알았다면 아마 보지 않았을 것이다.

딴지 걸고 대비시키려고 작정한 영화이다.

흑백의 대조와, 미국남자 프랑스 여자. 자유분방 싱글, 행복해보이는 유부녀.

그래서 더욱 짜증이 난다.

그녀는 과연 행복할까? 어쩌란 말인가?

행복하지 않으면 다들 바람 피우라고?

아 오해할까 싶어 덧붙이고 싶은 건

주인공이 남자이던 여자이던 내 반응은 똑 같다.

쳇 정서가 너무 틀리기 때문임 또한 인정해야 할까나? ^^




육체의 학교 (The School Of Flesh, L'Ecole De La Chair, 1998)


왠지 야한게 보고 싶어서 봤다.

제목에 완전히 속았다.

아는 이름 - 이자벨 위페르

원작이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이라는 것 같다.

한 중년여인과 청년의 사랑이야기.

정서가 틀려서인지 생김새가 틀려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프랑스 영화에 대해서는 왠지 모를 모호함을

많이 느낀다. 뭐 언젠가는 명확해지겠지.

사랑, 소유, 집착, 삶 그런걸 말하려고 한 것 같다.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