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 6, 2006

맥추 麥秋 / Early Summer (1951)


가족의 흥망성사? 탄생. 반복 뭐 그런거다.
단란한 가족 3대, 장녀의 결혼으로 인해 뿔뿔이 흩어지다.

1951년 영화. 오즈 야스지로.
아마 내가 기억하기론 오즈의 영화는 이게 두번째겠지만.
처음이나 마찬가지. 동경이야기는 기억이 잘 안 남.

오즈는 "이 영화에서 스토리 자체보다는 윤회라던가 무상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라고 했다고 한다.

행복해 보이는 한 가족의 해체과정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친구와 어제 페미니즘 이야기를 한 기억 때문인지.
이 영화에서 여자주인공의 행동은 왠지 그런쪽으로 해석이
되기도 한다. 모든 이야기의 중심은 노리코이다.

그녀의 결혼이 이야기를 끌어가고 가족의 모든 관심사이다.
그녀는 일종의 파격적 선택을 하게 되고 가족은 어쩔 수 없이
수동적으로 따라갈 수 밖에 없다.
난 페미니즘을 경계하는 편에 속한다. 물론 잘못된 편견과 무지에 일부
기인함을 인정한다. 내 단편적인 지식에 의하면 지금의 어떤 한국영화보다도
이 영화만큼 여성이 중심이 되는 영화는 없다.
굳이 딴지를 걸자면 여성이 남자를 선택할 뿐, 결국은 결혼해서 가정을 꾸려나가야
하는게 진정한 페미니즘은 아니다. 선택만 했을 뿐, 결국은 남성이라는 우월적 존재
에 종속되는 게 아닌가?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여성은 진정 그게 자신의 역할 이라고 생각하는가?

내가 이 영화에서 굳이 페미니즘이란 걸 말한 건 영화의 구성에 있어서의 주도적역할
과 계기등 모든 것을 끌고나가는 그 역할에 있음이다.
난 페미니즘도 남성우월주의도 모두 거부하는 쪽이다.
인간은 인간을 기본적으로 존중해야 한다.
나느 그것이 어떤 것보다 우선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당연한 것이다.
그것이 어떤 상대던 말이다. 물론 그렇지 않을 경우도 있다.

오즈가 한 말을 생각해보면 언뜻 와 닿지 않는다. 윤회, 무상이라.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가족 사진과 부모님만의 사진. 가족은 결국 이렇게 생성 소멸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두사람으로 시작해서 결국 두사람만 남는 것이다. 물론 가족이란 개념내에서 말이다.

가족은 각각 흩어지고 각각의 가족이 되어버린다.
이제 노부부는 추억과 사진 한장이 대가족을 생각케 하는 유일한 것이다.
이미 가족으로서 의미가 없는 삼촌이 바라 보는 것은 뭘까?

굳이 이 영화를 보고 분석하고 그러고 싶지 않다. 솔직히는 감상조차 적고 싶지 않다.

단지 노부부의 시선으로 혼례행렬을 같이 보고 있을 뿐이다.(그러고 싶을 뿐이 정확한 표현일꺼다.)
야마토에서 노부부가, 가는귀가 먹은 삼촌과 함께 머물면서 혼례행렬을 바라 볼때의
그 아련한 눈길은, 이른 가을의 벼이삭이 흔들림과 함께 뭉클한 여운을 남기지 않는가?.

이것 저것 주절거리긴 했지만 내가 하고 싶은말은 위의 마지막 문단이 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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