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 14, 2006

The Seven Samurai 七人の侍 Shichinin no samurai, 1954

아키라의 작품 중 아마도 외국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이 아닐까 싶다.
원작을 보지 못했던 나도 말은 참 많이 들었으니 말이다.

억압받고, 착취당하고, 수탈당하는 민중은 나름대로 자구책을 강구한다.
배고픈 사무라이 즉 로닌(낭인-주인이 없는 사무라이를 낭인이라고 한다더라)을 고용하여 산적들에게서 스스로를 구하려고 한다.

사무라이란 전혀 생산성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도 계급상만 높은 묘한 위치의 인간들이다.
쓸데없는 자부심만 강하다고 해야 하나.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의 경우 양반이란 위치와 비슷하다고 볼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벌레도 못한 농민들에게 고용된다는 것은 계급과 계층의 역전 및 소멸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렵게 구한 칠인의 사무라이는 당연히 특이한 개성을 가진 캐릭터들이다.
여기서 키쿠치요(미후네 토시로)의 경우에는 중의적 의미를 가진다
(그는 농부의 아들이며, 사무라이를 꿈꾼다). 마을 사람들과 사무라이의 중간에 걸쳐 있다.

사무라이들은 이들을 훈련시키고 마을을 요새화하여 산적들의 습격에 대비한다.
각각에 대한 불신을 가지고 이들은 싸움을 겪으면서 농민과 사무라이는 일체감을 느낀다.
농민들이 숨겨놓은 술과 음식을 제공하는 것도 이때이다.
그러나 많은 희생 후 남은 것은 메워질 수 없는 농민과 사무라이의 간극이다.

산적들을 물리친 후 남은 것은 결국 새로운 씨를 뿌리고 모를 내는 농민들 만의 축제이다.
그 축제 속에 사무라이는 절대 끼어들수 없다. 농민도 알고 사무라이도 알고 있는 것이다.

남은 것은 네개의 큰 무덤 뿐.
결국 가장 잔인한 것은 민중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들이 숨겨둔 무기를 꺼낼 때 추측할 수 있지 않은가?
그들은 사무라이를 이미 죽인적이 있다.
사람이 잔인해지고 거칠어질때는 보통 혼자일때 보다는 단체일 때 그러한 성격이 강해지는 것 같다.
혼자서는 할수 없는 일을 여럿이는 쉽게 해버리기도 하고 저질러버린다.
물론 좋은 경우일 때도 있지만 잘못 된 방향으로 발산될때는 그만큼 무서운 것도 없으리라.

인간의 이중성이란 것은 어디에서도 드러난다.
한가지 모습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이 영화는 인간의 복잡한 이중성, 계급의 역전 등 살아남은 것들에 대한 연민과 슬픔 그리고 애정을 보여주고 있는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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