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 31, 2006

Picnic

Iwai Shunji
Asano Tadanobu
Chara
i know when the world will end.
when i die.
it began when i was born so when i die, it will end

정신병원에 수감된 세 청춘의 지구종말을 지켜보기 위한 소풍.
자신을 괴롭힌 담임을 살해한 Tsumuji는 담임의 환영에 계속 시달리고 있다.
누가 진짜인지를 증명하기 위한 목매달기를 통해 쌍둥이 동생을 살해한 Coco.

이들은 구원 받기를 원한다. 그 어디에도 길은 보이지 않는다.
단지 금지된 벽을 걷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
그러다 벗어난 한 걸음은
구원의 가능성과 세계의 종말을 알려주게 되고,
그 세계 종말을 지켜보기 위한 그들만의 Picnic을 떠난다.

끝없이 이어지는 벽들, 그리고 벽에서 내리는 순간 그들은 세계의 종말을 각각 경험하게 된다
사토루는 벽에서 떨어지는 순간 자신이 중얼거리던 lovely doll이란 말처럼,
마리오네뜨의 춤을 추며 세상의 종말을 겪는다.
코코는 츠무지를 구원해준 천사로서의 역할을 마감하고 스스로 자신의 죄를 사하고,
자신의 세계를 스스로 끝내버린다. 왜냐구 그녀가 생각하는 신은 자신을 버렸으니까 스스로를 구원해야만 한다.
츠무지는 믿었던 신을 부정하며 자신을 구원했던 코코의 죽음을 보며 신을 저주한다.
그렇게 츠무지에게도 이 세계는 끝나버린 것이다.

까마귀 깃털옷을 입은 코코는 스스로의 정체성,
자아의 혼란으로 인한 인격분열 속에서 스스로의 한부분을 죽여버림으로써 느끼는 죄책감.
완벽했던 가족간의 유대를 끊어버림으로써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브를 상징하는 건 아닐까?
그러한 관점에서 이들은 에덴에서의 세 캐릭터로 볼수 있지 않을까?
coco는 이브, 츠무지는 아담, 사토루는 접어두자. 그는 어차피 마리오네뜨였을 뿐이다.
츠무지가 느끼는 이지메에 의한 교사살해도 마찬가지로 그의 정신적 질환으로 본다면, 자신이 저지른 또 저지를 것 같은 어떠한 원죄의식에서 해방되지를 못하고 있는 흔들리는 남자인 아담으로 보자.

이건 현대판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인가?
그럼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뭘까?
끊임없이 이어지는 벽은 그들의 세계와 그 너머의 세계의 확실한 경계이며,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괴리감일것이다.
우리는 구원 받을 수 있는가?
우리는 무슨 죄를 가지고 있는가?
누가 누구를 용서할 것이며 용서받아야 하는가?
가치관의 혼재로 인한 심리적 공황에서,
이들은 자신들만의 덧없는 세계를 구축한 것이 아닐까?
비록 그것이 우리 보기에 허망한 죽음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의 삶은 이렇게 끝나버렸다. 하지만 그들의 소풍은 계속인 건 아닐까?
석양을 향해 총을 쏘던 코코와 츠무지,
광고판의 여자를 향해 총을 쏘던 둘의 행동은 그냥 의미없는 동작에 불가한가?
우리에겐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만의 몸부림일 것이다.

나름대로 이런 생각을 해본다.
이런 의미를 둘 필요도 없고 헛된 사고의 잉여생산일런지도 모르겠지만.
내게는 그들이 선택한, 또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것들을 굉장히 이해하고 싶다.
.
벽위를 걷는 여러가지 장면,
벽위에서 본 세계는 그들만의 세계는 어떤 것일까?
경계에서 바라본 이쪽과 저쪽은 어떤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을까? 하고 상상해본다.

Chara와 Tadanobu는 아마 이 영화를 통해서 만나서 결혼한 듯,
잘 어울리네. 둘의 키스 신은 아주 훌륭했다.
하여튼 난 스왈로우테일과 이 영화를 통해서 chara의 팬이 되어버렸다.
쳇 유부녀에다 나이도 많은 아줌마를 10년이 지나서 좋아하게 되다니.

이와이 슌지가 굉장히 다양한 색깔을 가지고 있는지 최근에야 알게되다니, 아쉽다.

No comments: